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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비꽃의 지혜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7 조회수1,408 추천수7 반대(0) 신고



 

제비꽃의 지혜

 

 - 윤경재 요셉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4,42~44)

 

 

 

오늘부터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됩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늘 설레게 하고, 피어오르는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야흐로 만물이 조락하고 움츠러드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 사랑의 전령,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는 아이러니를 생각합니다.

 

봄의 전령인 제비꽃은 세계 도처에서 피어납니다. 어여쁜 노란색, 보랏빛, 흰색을 온 세상에 듬뿍 선물합니다. 그것도 산과 들, 야생의 장소뿐만 아니라 도심 속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뿜어냅니다. 크기도 작아 한 뼘 남짓 됩니다. 제비꽃은 전 세계 어떤 곳에서 한 줌 되는 땅뙈기만 있어도 가리지 않고 찾아듭니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처마 밑에 찾아와 집을 짓는 제비의 성품을 닮았다고 해서 제비꽃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제비꽃은 나름대로의 전략을 일 년 내내 구사합니다. 대개 다른 꽃들은 바람을 이용하거나 나비나 벌들을 매개체로 하여 번식합니다. 그래서 벌과 나비가 살기 어려운 삭막한 콘크리트 도심 속에서는 꽃을 피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비꽃은 지구 상 어디에서나 살고 있는 개미를 이용합니다. 개미들이 좋아하는 젤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씨앗을 담아둡니다. 그러면 일개미들이 젤리를 물고 곳곳에 퍼진 개미집까지 날라다 놓습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저장해 둡니다.

 

막상 땅속 깊숙이 위치한 개미집에서는 싹이 트기 어려운데 제비꽃은 미리 개미의 특성을 파악하여 놓았습니다. 젤리와 씨를 분리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개미가 젤리만 먹고 나머지 씨앗은 지상 근처 개미 쓰레기장으로 옮겨 버리게 하는 지혜를 짠 것입니다. 쓰레기장에서는 싹이 쉽게 지표를 뚫고 나올 수 있습니다.

 

개미가 집을 짓는 곳에는 반드시 신선한 흙이 있게 마련입니다. 개미집 근처 쓰레기장은 개미의 분비물로 인해 영양이 풍부합니다. 한마디로 식물이 자라기 안성맞춤인 곳이죠. 이렇게 해서 개미가 사는 곳에는 반드시 제비꽃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 상 어느 곳에나 흙만 있으면 제비꽃은 자기의 터전이 되는 셈입니다.

 

제비꽃이 구사한 지혜는 먼저 다른 동물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자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제일 좋은 것을 베풀어 주고, 자신은 하찮은 쓰레기가 되어도 좋다는 전략입니다. 아무리 누추하고 험한 곳에서도 그 지혜는 통할 것을 알았습니다.

 

꽃말이 사랑이고 순수함인 제비꽃은 앉은뱅이 꽃이란 별명도 있습니다. 도심의 담벼락 돌 틈 사이에서도 필 정도로 작아서입니다. 그리스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사랑하던 연인 이오의 눈을 닮았다고도 전하는 이 꽃은 깊고 그윽한 향기도 일품이랍니다.

 

제비꽃의 지혜를 전해 들었을 때 탁하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예수님의 행적과 비슷한지 놀랐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무 조건 없이 사람들에게 두터운 사랑을 베푸셨고, 당신은 인간쓰레기들이 처형을 당하는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버림받은 것 같았던 그곳에서 당신의 왕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윽한 향기가 온 세상에 퍼져나갔습니다.

 

한갓 미물처럼 보였던 제비꽃도 먼저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한다는 사랑의 아이러니를 베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잘난 체하는 인간은 도리어 그 아이러니를 깨닫지도 못하고 실천할 줄도 몰랐습니다. 자신을 먼저 내어주기가 그다지도 싫었던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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