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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27." 깨어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7 조회수1,411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 24,37-44(대림 1주 주일)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의 때에 이르렀습니다.

 

   이 대림시기의 제일 큰 주제는 ‘깨어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도 ‘깨어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37-41절)는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집니다.

 

대체 끔찍하고 잔인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를 말씀하시면서, 그때 그 사람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곧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홍수가 들이닥쳤다고 말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타락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심판을 받은 그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곧 마구 먹고 마시는 사람들, 장가들고 시집가는 사람들, 들에 있는 사람들, 맷돌질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노아의 홍수가 사람들의 타락 때문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안일한 삶, 곧 삶의 안도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곧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무관심과 안일한 삶, 그리고 타성에 젖은 평범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나쁜 짓이나 방탕한 생활, 그리고 부도덕한 악행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그러한 것들에 빠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생활의 편리와 안주에 빠져있다면, 심판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죄를 피하고 있다할 지라도 사랑하고 있지 않으면 심판받게 된다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곧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선과 정의로 진리 편에 서서 이를 행하고 이를 위해 투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빛에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항상 빛 가운데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것이 ‘깨어있음’의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집주인과 도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알다시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 지 집 주인이 안다면,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4,43)

 

 

 

   이는 어느 한 순간도 주의와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깨어 있으며, 하느님을 기다려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방심한 사이에,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준비하고 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오심을 항상 생각하여야 할 일입니다. 한 가지 오심은 세상의 종말에 그분이 오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모든 것에 대해 셈을 바쳐야 하는 그런 오심입니다. 또 한 가지 오심은 나날이 오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기다리지 않고 준비하지 않고, 빛 속을 걷지 않는 이들에 대한 경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깨어있음’의 의미는 세 가지로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에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로서의 깨어있음’이요, <둘째>는 유혹에 대한 ‘경계로서의 깨어있음’이요, <셋째>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주님과 동행하여 걷는 ‘기도로서의 깨어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의미인 마지막 날에 오실 주님을 맞이할‘준비로서의 깨어있음’은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첫 번째 분명한 사실은 주인님이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오시지 않는다면 굳이 고대하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굳이 깨어있을 필요도 없는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분명 오십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은 그분이 오신다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정 믿는 자만이 진정 깨어있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음은 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오실 님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을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잠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깨어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깨어 있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으로 이미 깨어난 까닭입니다.

 

   그러니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잠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졸지 말라는 말입니다. 헛 군데 눈 돌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은 얼차려 입니다. 정신차려있는 것 입니다. 마음의 경계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깨어있음’의 <둘째> 의미인 유혹에 대한 ‘경계로서의 깨어있음’이 있게 됩니다. 곧 깨어있음은 한편으로는 빛에 대한 지향으로 깨어있음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어둠에 대한 경계로 깨어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둘째 깨어있음에 대해 말해줍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2-13)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서야 깨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와 ‘아직 아니’ 사이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오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주님과 동행하여 걷는 ‘기도로서의 깨어있음’인 그 <셋째>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이사 2,3)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가자”(이사 2,5)

 

 

 

   그러니, 이제 우리는 깨어, 이 빚 속을 걷고자 합니다. 이미 대림초를 밝혔으니, 깨어 그 길을 걷고자 갑니다. 오늘의 <화답송>으로 이렇게 노래하며 말입니다.

 

‘나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이미 기뻤노라~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시편 122,1 참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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