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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마디 말이 갖는 위력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8 조회수1,209 추천수8 반대(0) 신고



 

한마디 말이 갖는 위력

 

- 윤경재 요셉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마태 8,5~9)

 

 

 

몇 년 전에 한 침대회사 광고 문구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라는 카피였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시험에서 오답을 내었다고 해서 학부형들이 문제를 삼았습니다. 언론에서도 이 카피 문구가 정확한 사실을 오도할 수 있다고 보도해서 결국 그 광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언어 습관과 사회가 얼마나 편협되고 비유에 인색한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또 차동엽 신부께서 미국에 특강을 갔다가 느낀 소회를 묵상글로 쓴 적이 있는데 그 내용도 이와 비슷합니다. 교포들에게 한국어로 여러분, 행복하세요?’ 하고 물으면 어딜 가나 약간 뜸을 들이고 마지못해서 단답형으로 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데, 영어로 ‘Are you happy?’하고 질문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우레와 같은 대답을 한답니다. ‘Yes, I’m happy.’ 두 질문 내용이 동일한데 그 대답하는 태도는 천양지차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돌아오면 진지해지고, 영어로 돌아가면 happy 해진다.”라고 유머러스하게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지나치게 진지하고 비유를 비유로 받아들이는데 약점을 드러낸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는 말이죠.

 

비유를 낯설어하니 성경에서 나오는 수많은 비유와 은유를 얼마나 제대로 적확하게 이해할는지 사실 의문스럽습니다.

 

비유에 약한 사람은 도리어 비교에는 강점을 드러냅니다. 특히 남과의 비교에 몰두합니다. 비교의 대상이 남일 때 사람들은 불행해집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 평가 기준을 남에게 둘 경우,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부자유스러워집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꿈을 좇는 삶을 살아가지 않고 남과 비교하면서 목적의식을 상실한 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삶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 속도감에 또 자신을 잃고 맙니다. 악순환이 연속됩니다.

 

그래서 비교는 비극으로 가는 길이고, 비유는 비전으로 가는 길이다.’ 라는 어느 작가의 말도 나왔습니다.

 

우리가 모성이라는 추상적 단어를 떠올릴 때에도 자신이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았던 장면을 먼저 떠올린 다음 그 이미지를 적절히 표현하는 개념을 찾아 기억하는 것이 비유를 사용한 예입니다. 모성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장황한 논리적 설명을 통한 비교보다 어머니 옷고름을 적셨다.’라는 촌철살인의 감성적 비유가 사람들을 매혹하게 하죠.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예수님과 자신 그리고 자신과 자신이 아끼는 종의 관계를 비유로서 풀어내며 주님의 치유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중풍병든 종을 바라볼 때 자신이 느끼는 안타까움과 통절함을 주님도 같이 느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럴 때 나오는 한 말씀은 커다란 위력이 있을 거라는 비전을 알아챈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그런 치유능력이 없지만 주님께는 가능할 거라는 비전을 가진 것입니다. 자신이 잘하는 점이 있는 것처럼 주님께 맡겨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비유로 풀어내었습니다.


동물 유치원에 오리, 토끼, 참새가 엄마 손에 이끌려 공부하러 모였습니다. 즐거운 수업시간이 끝나고 방과후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수영 시간에는 오리가 제일 빨랐고, 등산 시간에는 토끼가 오리를 따돌렸습니다. 노래 시간에는 참새가 음악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토끼는 아예 아무 소리도 못 내었습니다.

 

토끼가 수영을 못한다고 극성쟁이 엄마가 수영대표 팀 코치에게 개인교습을 해준들 오리를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등산 시간에 토끼에게 뒤떨어졌다고 오리의 발을 성형수술 해준들 제대로 달리 수나 있을까요? 노래 못 부르는 토끼에게 성대 수술을 해 주어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냥 자기가 잘 하는 것의 성공체험을 가지고 살면서 타인이 잘하는 것에 박수를 쳐주는 게 올바른 길입니다. 그런 삶이 비유의 삶입니다. 비교가 아닙니다. 비교할 대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면 자신이 본래 가진 능력마저 퇴보하는 우를 범할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처사는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여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유의 비전을 여는 방법입니다. 그럴 때 그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백인대장이 덧붙여 한 말을 우리가 매 미사 시간에 되풀이하여 합송 합니다. 영성체 시간에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외칩니다. 한 사람의 비전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발휘되는 장면입니다. 백인대장의 시의적절한 한 마디 말이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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