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잘 섬기는 것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8 조회수1,044 추천수1 반대(0) 신고

 

잘 섬기는 것

십자가 아래 서서 그것을

견디고 있을 때만큼 하느님을

 잘 섬기는 때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만일 하느님께 봉사할 때에

힘들고 여러운 일을

감당해야만 할 경우

우리가 슬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무런 공로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슬픔이

고통을 예감한 데서 오는것이라면

주님의 슬픔과 같은

이유에서 오는것입니다...., 악마는

 우리가 겸손하지 못 할 때

아주 좋아합니다.

겸손한 성인들에게 보내는

찬미소리가 하늘에 가득히

울려퍼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에 부딧쳤을 때 주님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마태26,39)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잃을 때

악마는 "포기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계속

투쟁해야 합니다.

성인들은 고통을 참기 위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이 야기 입니다.

우리가 결심한 바를 해내지 못할것 같은

 무시 무시한 두려움을 느끼는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드리신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땅에 엎드려 이렇듯 깊은

고뇌에 잠긴 우리를 발견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극도의 고통에 대한 강한 저항이

 혈관을 눌러 주님으로 하여금

 피땀을 흘리게 했으며,

그 피가 옷을 적시고

 땅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들이 단 것을

마시는 것같이 아픔을 삼킨다고

생각하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께서도 당신 앞에 다가온 고통에

  몸을 움츠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몸은 온통 피에

젖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마르14,33참조)

 당신 스스로 수락하신 두려움에

사로잡히셨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전율 할 고통이

온몸을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공포에 싸인 사람을 보는 것만큼 

무시무시한 일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자신을

이끌어 나갈 만한 힘이라곤

낌새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주님께서 공포를 느끼셨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존경에 가득 찬 마음으로,

주님이 우리를 위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낮추신 그 신비의 경지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

결코 하느님께 대한 불신의

표시가 아니라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배우도록 하십시오.

- 하느님께 신뢰 중에서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