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채권자는 채무자보다 기억력이 좋다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9 조회수1,468 추천수6 반대(0) 신고


 

채권자는 채무자보다 기억력이 좋다

 

- 윤경재 요셉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루카 10,21)

 

 

 

어느 경영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차이를 아는 사람?” 여러 가지 답이 쏟아졌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채권자이고, 돈을 빌려간 사람이 채무자라는 원론적 답부터, “돈이란 본시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 것이라는 속담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교수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채권자가 채무자보다 기억력이 좋다는 거지!”

 

몇 번인가 동생들과 말다툼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다툼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내 입에서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에 선명합니다. “지금 네가 섭섭하다고 말하는데 그게 뭐가 큰일이라고 이러냐? 전에 ~일이 있었을 때 내가 나서서 다 해결해주었고, 다른 일로도 신경 쓰느냐 돈도 적잖이 썼고, 때로는 같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굽실대느냐고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느냐?”라고 따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더니 동생들도 똑같이 할 말이 있다며 비슷한 스토리를 털어놨습니다.

 

그 후 어느 사제의 글에서 우리는 살면서 눈에 보이는 금전 대차대조표만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대차대조표를 각자 마음에 각인하고 산다는 글을 읽고 내가 바로 그런 놈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대차대조표에서 신세 진 대변은 다 잊어버리고 내가 빌려준 차변의 숫자만 새기고 살았습니다.

 

그동안 저와 동생은 서로 엇갈리는 셈법만 기억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자기가 해준 일만 기억하고 남이 베풀어 준 도움은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장부에 아무 숫자도 적혀 있지 않은데, 각자 자기 눈에는 채권 란의 글자들이 수시로 떠올라 온 것이죠. 공치사를 받고 싶은데 말로 표현은 못하겠고 자기 마음속 장부에다 철필로 새겨놓은 것입니다.

 

그 사제님께서 이렇게 글을 마치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기록되지 않은 채무 란에 부채가 수두룩하다는 것을 떠올리십시오. 그것을 읽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자면 다들 앞만 바라보지 말고 뒤를 돌아볼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은 혜택들, 하늘과 바람과 물뿐만 아니라, 우리 곁을 지키고 서서 힘과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떠올리고,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무사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봄부터 겨울까지 천둥과 먹구름이 울고, 타고 다니는 시내버스 기사가 온몸의 근육과 시선을 집중하여 자신을 소모한다는 것을 가끔은 떠올려 봅시다.”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랑하는 자는 자기 기억만 내세우고 타인의 기억은 지우개로 지우는 채권자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약삭빠른 채권자는 성공을 위해서 도처에 밑밥을 뿌려 놓고 때가 되면 몇 배나 되는 이자를 덧붙여 거두어드리려고 작정하며 삽니다. 그런 사람들이 더 현명하다고 평판을 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모두 부러워하며 그들을 맹종합니다. 그럴수록 성공하고 더 힘을 얻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편리한 기억력을 가진 채권자 같은 삶의 종착역은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도취뿐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께서 철부지라 표현한 사람은 과거에 벌어진 자신의 셈법을 다 잊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은 바로바로 표현하고 자신이 해준 것은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오로지 한 사람만 보고 삽니다.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어머니입니다. 잠시라도 눈에 뜨이지 않으면 온 세상을 잃은 듯 웁니다. 그 어떤 대용품을 가져다 보여주어도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어머니가 해 준 것으로 알고 지냅니다.

 

그렇습니다. 철부지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은 사소한 도움을 준 사람 손길에서 금세 어머니의 체온을 느낍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며 작은 도움의 손길 속에서도 크신 예수님의 따스한 손길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철부지이며 어린아이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