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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1.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30 조회수1,35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세상에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고민의 연속일 것입니다.
저 역시 큰 고민이
 휩싸였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지요.
이런 고민으로 인해서
 어떤 해결점을 보았을까요?
솔직히 어떤 해결점도 없었고,
고민하느라 시간만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서
 꾸준히 해왔다면 어떤 결실을
 맺었을 텐데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보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 역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일에 대한 것도 있고,
제가 근무하는 성지 안에서의
고민 역시 그 크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은 고민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을 때 자그마한 결실이라고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가 되면서
특강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강의가 있습니다.
성지 미사도 제가 모두 다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칠 것이라는 것이지요.
고민은 고민일 뿐,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 고민을
 했냐는 듯 잊힐 것입니다.
오늘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그물을 과감하게
 버렸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고민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기 잡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물을 버립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바로 즉각적인 복종을 바라십니다.
세상 것에 매달리는 모습을 통해서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속된 욕망을 버리는 것은
많은 것을 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눈에서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었을까요?
세상의 일, 물질적인 재산,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려는
욕심과 이기심에서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고민으로는 절대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민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신 어떠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했을 때 고민에서 벗어나서
분명히 주님께 더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순간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를 넘어
 퍼져 갈 것이다.
(코리타 켄트)
성 안드레아 사도.
불평과 감사.
심리학자 할 어반은
70만 명을 대상으로
24시간 동안
절대 불평의 말을
하지 말라고 시킨 다음,
24시간 후에 솔직한
불평여부를 측정했습니다.
사람들은 평균 6~12번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에 단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실험에 참가한
70만 명 중에서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글쎄 딱 4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참으로 많은 불평불만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평불만으로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모든 것이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는
불평불만보다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심리학자 할 어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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