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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당신께만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평화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30 조회수1,53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가해 대림 제1주간 목요일


<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독서: 이사야서 26,1-6






 그리스도의 성면


 키예프 화파 작

인터넷 송창민 연애컨설턴트에 양다리 걸치게 된 사연들이 있어 두 개를 옮겨봅니다.

 

사례1. A(27)은 지금 양다리 연애를 하고 있다. 10여 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져 30대에 들어선 언니 때문이다. 연애 경험도 별로 없고, 당연히 결혼하리라 생각했던 남친과 헤어진 언니는 화려한 싱글도, 골드미스도 아닌 그냥 노처녀’, 그것도 남자 만날 기회도 별로 없는 노처녀가 되고 말았다. 언니는 말한다. “한 사람만 사귀지 말고 두루두루 많이 사귀어 봐. 그래야 내 꼴 안 된다.” A양은 언니의 경험을 거울삼아 아슬아슬 양다리 연애를 하고 있다.

 

사례2. B(29)7년간 사귀어 온 남친과 이별했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제 곧 서른인데 꽃다운 나이 다 보내고 이제 어쩔 거냐고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좀 사귀어 놓지.”라는 말까지 듣는다. 하지만 B양은 후회는 없다. 사랑할 만큼 사랑했고 행복할 만큼 행복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누군가를 함께 만났다면 그만큼 사랑할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한다.

 

연애할 때 양다리 걸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지금 사귀는 사람이 시간이 지난 뒤 더 이상 지금 느낌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 그 사람이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으로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누군가로부터 버려지는 경험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병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여 많은 보험을 들게 되는데 결국 그러다가 바람둥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가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왜 오는 것일까요? 상대가 변하는 것 같아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변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기준대로 상대를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신뢰가 부족하니 상대가 나에게 대하는 것도 다 그렇게 보여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즘 가장 핫 한 인물이 있다면 바로 손석희’ JTBC 아나운서 겸 보도국 사장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보도한 여러 뉴스들로 여러 번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까지 받고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언가 믿는 것이 있어서 결코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나라의 곪아가는 어떤 곳을 터뜨렸습니다. 만약 세상 것에 신뢰를 두었다면 끝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변하지 않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외압에 흔들림 없이 객관성 있는 뉴스를 전달하다보면 박해도 받겠지만 결국 그런 삶이 언론인으로서의 가장 행복한 삶임을 믿었을 것입니다. 세상은 두려움으로 이것을 잃으면 그것을 대체해 줄 무언가를 보험으로 들어놓으라고 하지만, 결국 그렇게 미지근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늘 독서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당신께만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두어야하는 대상은 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밤하늘에 뜬 북극성이 위치를 바꾸지 않아 뱃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별이 되었듯이, 주님께서도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 반석이십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주님은 반석이시고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저도 주님께서 불러주실 때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세상 것에 행복을 두어야 할 것인지, 주님께 온전히 신뢰할 것인지. 그렇지만 사제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이나 재물, 사람들의 애정 등에 신뢰를 두게 될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실 수도 있고 빼앗아 가실 수도 있는 분임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저는 요즘 탈출기를 묵상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러 갈 때 치포라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세의 결단을 생각합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혼인해서 살던 여자를 집으로 돌려보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확실히 우리의 신뢰를 당신 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두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결국 어떤 일을 했을 때 모든 공로가 당신께로 돌아가지 않고 나를 도와주었던 그 사람들에게도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당신께 의탁할 당신의 종을 필요로 하고 계시고 그렇게 살면 반드시 다른 어떤 선택보다 더 큰 평화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나의 평화와 기쁨을 위해 오직 주님만으로 충분하고 그분의 뜻을 따름만으로 충분함을 굳게 신뢰합시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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