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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1204 - 가해 대림 제2주일 복음 묵상 -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3 조회수1,30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 12 04 () 가해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사회 교리 주간) 복음 묵상

이사야서 11,1-10
로마서
15,4-9
마태오복음
3,1-12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161204)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그분의 설교 및 예수님에 대한 그분의 예고 등을 알립니다. 예수님은 한 때, 요한의 세례 운동에 가담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오복음서(11, 7-14)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요한을 극찬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언자보다도 훌륭한 사람’, ‘여자 몸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인물’,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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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요한이 세례를 받은 예수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라.”는 이사야서(40, 3)의 말씀을 인용하여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를 자리매김합니다. 오늘 복음에 요한이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싶었던 초기신앙공동체의 뜻이 담긴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이 요한의 입을 빌려 ‘그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고 선언하는 것도 같은 의도가 반영된 언급입니다. 예수님에 비하면, 요한은 종도 되지 못한다는 초기 신앙인들의 메시지가 담긴 언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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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그 시대 팔레스티나의 세례운동가들 중 한 분이었습니다. 다양한 세례운동들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 세례운동은 물에 몸을 잠그거나 씻으면서 죄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신심운동입니다. 요한의 세례운동은 그 시대 유대교 기득권층의 가르침과는 달랐습니다. 율사들은 오로지 율법준수만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라 고집하였습니다. 성전의 사제들은 성전 의례의 준수만이 오로지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비롯한 그 시대 세례운동가들은 유대교의 기득권층인 율사와 바리사이들을 비판하면서 세례운동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요한이 그들을 비난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로 시작하여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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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또 그들에게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하느님 앞에 어떤 특권을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원(起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출신지방, 출신가문, 출신학교, 취득한 자격증 등을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모두 기원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런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에 준해서 행세하는 우리들입니다. 요한은 그런 기원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느님 앞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실천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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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운동은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삶을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을 찾아가서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자기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실천을 약속하면서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삶을 바꾸는 회개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은 다소 위협적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 하느님의 삶을 배워 실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시오.(루가 6, 36).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마태 5, 45)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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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고 말합니다. 구약성서에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곳(호세 2, 16 참조)입니다. 요한의 복장은 구약성서가 전하는 엘리야 예언자의 것입니다(2열왕 1, 8 참조). 요한은 음식도 많이 절제하였습니다. “요한이 와서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귀신들렸다고 사람들이 말한다.”고 마태오복음서(11, 18)는 언급합니다. 요한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살던 방식을 따랐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은 그 당시 유대교 사회에서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을 아끼는 것이었지만, 그분의 삶은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의 모습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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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 점에 있어서 요한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살지도 않았고, 특수 복장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 유대교가 요구하던 단식에도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식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유대인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마르 2, 18 참조).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하느님은 성전 안에만 계시지도 않고, 율법을 지키는 것만 지켜보고 계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성지순례, 혹은 철야기도를 할 때만, 우리와 함께 계시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자비롭고 그들을 용서할 때, 우리 안에 그 자비와 용서의 원천(源泉)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것이었고, 그것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실현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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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림절입니다.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입니다. 회개는 고행(苦行)을 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회개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자각하고, 그분의 자비를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고 요한은 오늘 복음에서 말합니다. 회개는 새로운 실천을 낳습니다. 하느님이 아버지이시기에 그분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이웃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외면하거나, 버렸던 이웃에게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가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우리는 분하거나 억울할 때, 자비롭지 못합니다. 자비롭고 용서하는 사람이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숨결로 살아계시면, 우리는 그 숨결 따라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자유를 배워 실천합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분의 숨결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새로운 실천이 우리 안에 나타나게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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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16120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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