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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천벽력 같은 선언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5 조회수1,274 추천수7 반대(0) 신고


 

청천벽력 같은 선언

 

-윤경재 요셉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루카 5,52~26)

 

 

 

 

중국 불교 선종의 법맥을 일으킨 초조 달마 대사와 2조 혜가 그리고 3조 승찬 사이에 이어진 불법 전승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3조 승찬은 젊어서 온몸이 문드러진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가 2조 혜가를 찾아와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부디 제 죄를 없애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유다인처럼 자신이 지은 죄 탓에 병에 걸린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스스로 수긍이 되는 원인을 찾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혜가가 답했습니다. ‘그럼 네 죄를 내놓아 보아라. 내가 그 죄를 없애주겠다.’

 

이 말을 들은 승찬은 무척 기뻤습니다. 어딜 가서도 들을 수 없었던 희망이 보였습니다. 죄를 내놓기만 하면 없애준다니, 어떻게 지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전생의 죄를 한 방에 없애준다 하셨습니다. 그는 찬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옥죄던 죄를 살폈습니다. 죽도록 제 몸뚱이를 괴롭혔던 내 안의 죄를 뒤졌습니다. 그걸 꼭 찾아서 내놓아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지금도 내 안에 요동치는 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거머쥘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내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죄가 내 안에 분명 있는데 왜 잡을 수가 없는 건가? 왜 끄집어 낼 수가 없는 건가?’ 그는 스승에게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죄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혜가가 답했습니다. ‘그렇지? 네 죄가 이미 없어졌다.’

 

 

 

가 이미 없어졌다는 스승님의 답은 충격 그 자체이었습니다. 이에 승찬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죄의식이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질병과 죄의식은 인간에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그 난제를 해결하고자 숫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존재론적인 문제였기에 피상적인 답으로는 헛돌기 마련입니다. 인식의 전환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질병과 죄의식은 뿌리가 뽑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9장 태생소경을 치유하시는 표징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그야말로 질병과 죄의식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뿌리째 뒤흔드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이 말씀을 잘못 받아들이면 마치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려고 일부러 그를 소경을 만드셨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어리석은 저도 이 대목에서 걸려 넘어져 한동안 헤맨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소 어법을 미루어보면 우리의 시선을 한 곳으로 이끌어 더 높은 차원으로 들어올리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에는 보다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심연에로 눈길을 돌리라는 요청입니다. ‘누가 죽을죄를 지었는가?’라고 묻는 대신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는 바가 무엇인가?’하고 물으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순결하고 순수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살아가면서 하나씩 때가 끼어서 점차 본래 나의 모습이 어땠는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립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채우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답시고 적정선을 넘쳐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우를 범합니다.

 

승찬은 스승의 질문을 통하여 본래 자기의 진면목을 자각한 것입니다.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순결한 자신의 모습이 자기 안에 엄연히 진주처럼 빛나고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가 아니라 죄의식이 자기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었고, 가면을 쓴 것처럼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자각이 불현 듯 솟구친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팔아 마음 밭에 묻힌 진주를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진주를 잘 갈고 다듬어 영롱한 빛을 발하도록 만들고 이웃에게 널리 보여주어야 할 사명을 죽을 때까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묵묵히 수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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