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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프란치스코의 수프 한 수푼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6 조회수1,737 추천수9 반대(0) 신고


 

성 프란치스코의 수프 한 수푼

 

- 윤경재 요셉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 18,12~14)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몇몇 제자들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저녁 젊은 제자 한 명이 맛있는 스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싸늘한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따가운 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가서 그 젊은 제자가 먹었던 스프를 천천히 몇 숟갈 떠먹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고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프를 떠먹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단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이야말로 지금 더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수께서는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는 오명을 들어가면서까지 몸소 죄인들과 어울리셨습니다.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로서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께서 스스로 길 잃은 양이 되셨던 것입니다. 당신의 온전함을 나누어 주기 위하여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시고자 한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님 모습은 사람들의 부족한 면과 필요한 점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그에 알맞은 처방을 내어주시는 디테일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십니다. 한번도 허투루 응대하시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한번도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그냥 동정을 베푸는 듯한 우월한 자세를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길 잃은 양들은 모두 나름대로 사연이 있습니다. 다리를 전다든지, 배가 고파서 풀을 뜯다가 일행을 놓쳤을 수도 있습니다. 호기심이 동해 한눈을 팔다가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남과 다른 자존심으로 고집을 피우다 외톨이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의 이런 성질을 낱낱이 기억합니다. 어떤 녀석이라도 사라진 걸 바로 파악하고 길 잃은 양이 어디쯤에서 헤맬지 알아서 금세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99마리 양을 잠시 따로 놓아두어도 되었습니다. 길 잃은 양이 사라지고 난 뒤에 야단법석을 떠는 게 아니라 미리 대비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말마따나 스프 한 숟가락을 떠먹은 행동은 죄가 아닙니다. 그저 실수일 뿐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스승님을 모시고 단체로 40일 간 금식을 하였다는 자긍심이 한 사람 때문에 무참히 깨졌다는 점에 분노한 것입니다. 그들의 눈길 속에는 그를 단죄하여 손상된 자긍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고자 하는 욕심이 담겼습니다. 결국은 자기들 욕심을 만족시키려고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그를 단죄한 셈입니다. 죄가 아니었음에도 자기들 편의에 따라 죄로 만들어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르기에 앞서 사랑이 우선한다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행동과 말씀은 양떼를 보살피는 목자의 본보기입니다. 시비선악을 가르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쾌도난마처럼 해결될 일이 전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2의 시비선악 문제를 일으키는 단초가 될 뿐입니다.

 

예수님 앞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고발한 사람들은 예수가 율법에 따라 단죄하는 모습을 보고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두번에 걸쳐 땅에다 무엇인가 쓰시고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역으로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의외의 행동은 정의를 판단하시되 사랑을 우선한 행동이며, 용서를 베풀되 정의를 훼손하지 않은 복층적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의를 생각하되 사랑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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