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40,1-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6 조회수1,073 추천수1 반대(0) 신고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40,1-11)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2)


여기서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는 직역하면 '너희들은 예루살렘의 마음에 말하여라'는 의미이다. 

'땀베루 알 레브'(dabberu al leb; speak tenderly to)에서 '마음'(leb; '레브')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예루살렘에 말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위로와 격려를 주는 메시지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남부 유다의 도성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빌론 땅에서 포로로 끌려가 살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들을 지칭하는 비유법적 표현이다. 

이들을 굳이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이 마음으로 하느님 임재와 현존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향해 있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열망하는 야훼 신앙을 신실하게 간직한 자들이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먼 나라 이방의 땅에 포로로 잡혀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이다. 징계와 심판의 자리에서 신음하며, 회복을 기대하면서 거룩한 희망을 품고 해방을 갈구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 낙심하게 하는 말, 꾸짖음과 비난의 말은 적합하지 않다. 

이제 충분한 징계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른 회개도 채워졌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 격려의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음에 닿도록'이란 표현을 '다정히'로 의역했다. 


한편 위의 명령에 이어 '그것에게 위쳐라'라는 명령이 이어진다. 여기서 '그것에게'에 해당하는 '엘레하'(elleha)는 전치사 '엘'(el)3인칭 여성 단수 목적격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 '그녀에게'(to her)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녀'는 앞 문장의 '예루살렘'을 지칭한다. 

그리고 '외쳐라'에 해당하는 '웨키르우'의 원형 '카라'(qara)원래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전하는 것을 확실히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는 회복과 죄의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이다. 이것은 작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전할 성격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기쁜 소식이며, 너무나 애타게 기대하던 소식이기 때문에 큰 소리를 질리서 모든 사람들이 외쳐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명령형 동사를 2회 사용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마음에 닿도록 말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크게 외치라고 예언자들을 향해 명령하시며 촉구하시는 것이다.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말하고 외쳐야 할 기쁜 소식은 세 가지로 소개되어 있다. 첫번째 외쳐야 할 메시지 복역의 기간이 끝났다는 예언이다.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에 해당하는 원문은 '키 말레아 체바아흐'that her hard service(warface) has been completed(accomplished)>이다. 


여기서 '말레아'(malleah)의 원형 '말레'(malle)가 '충만하다'(탈출40,34)는 뜻과 더불어 '마치다'(레위8,3)는 뜻으로도 사용되며, '체바아흐'(tsebaah)의 원형 '차바'(tsaba) 또한 '군대'(탈출6,26), '전쟁'(욥기7,1)이라는 뜻과 더불어 비유적으로 비참한 상태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래서 문맥상 그리고 장차 남부 유다가 겪을 역사적 경험을 감안할 때, '그 힘든 시기가 끝났다'는 의미가 자연스러울 것 같다. 


예루살렘이 바빌론의 공격을 받아 그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기 시작한 때제1차 바빌론 침입이 있었던 B.C.605년이다. 

그리고 포로 해방은 B.C.539년 메디아 페르시아 연합군에 의해 바빌론이 정복되고, B.C.538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포로 귀환 칙령을 발표했으며, B.C.537년 즈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제1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면서부터이다. 


본문은 선민에게 이루어질 바로 이러한 상황을 예언하고 있다. 본문은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과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록 발생 시점이 미래이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섭리 계획 가운데서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서 발생 사실이 불보듯 명확함을 나타내기 위해 완료시제를 사용한 것이다.


그 복역의 기간은 70년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 생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자 예레미야가 에언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예레29,10).

그 70년의 기간 동안 남부 유다의 토지는 황폐하게 벗겨져 있었고, 그 황폐함으로 말미암아 그 땅은 그동안 누적된 죄악의 잔재를 털어낼 수 있었다(2역대36,21). 


70년의 복역 기간이 끝나기까지 예언자들을 포함한 의로운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진실한 회개와 회복을 염원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예언자 다니엘은 예레이먀의 예언을 깨닫고 단식하며 예루살렘 귀환을 위해 기도하였다(다니엘9,2-19).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것을 전해듣고 조상들이 저지른 죄와 허물을 돌아보며 하느님 대전에 뜨거운 회개와 간절한 귀환의 염원을 담아 올렸다(느헤1,2-10). 

이처럼 정의에 근거한 징계와 그러한 하느님의 징계 가운데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의로운 백성들의 하느님 자비에 근거한 회복의 간구가 쌓이며 정해 놓은 날이 이르게 되었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포로 해방의 날이 도래한 것이다. 


'죗값이 치러졌으며' 

예언자들이 백성들에게 외쳐야 할 두번째 내용으로서 사죄(死罪)에 관한 선언이다.  여기서 '죗값'에 해당하는 '아오나흐'원형 '아온'(aon)사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가 각각 멸망한 원인은 주님을 대적하여 우상을 숭배하며, 주님의 율법을 거스려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데 있었는데, 본문의 '아온'(aon)은 바로 그와 같은 선민들의 죄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의 바빌론과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단지 군사적으로 약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두 나라의 멸망의 근본 원인은 영적인 데 있었는데, 그들이 죄악이 하느님의 보호를 해제하게 만들었고, 그들을 둘러쌌던 담과 울타리가 헐리자 이방인들은 마음껏 그 땅을 유린하고 만 것이다. 

열왕기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진술해 주었다(2열왕17,7-18).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에 대해 영원히 징계를 내리지는 않으셨다. 

죗값을 감당하기로 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느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바빌론에서 혹독한 시련을 받도록 하였으며, 그것을 그 죄에 대한 형벌로 간주하시고, 그 정하신 기간이 종료되자 그들의 죄에 대해서도 완전한 용서를 베푸셨다. 


'치러졌으며'에 해당하는 '니르차'(nirtsah; has been paid for)의 원형 '라차'(ratsah)원래 매우 즐거워하여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의미한다(레위19,7; 1역대29,17). 

본문에서 수동형으로 사용되어 죄사함이 형벌받은 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일임을 나타낸다. 이 동사도 완료 시제로 사용되었지만, 이것 역시 예언적 완료로서 그 성취가 확실한 것임을 나타낸다. 


'주님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세변째로 예언자가 외치는 내용은 선민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당한 고난이 들의 죄에 대한 형벌로서 충분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주님의 손에서'라는 표현은 남부 유다 백성이 겪은 모든 고난이 주 하느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그것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주 하느님의 공의로운 형벌이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그들이 그 형벌을 갑절이나 받았다는 것은 과도하게 당연히 치러야 할 형벌의 두 배를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형벌을 치를 만큼 치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율법에는 도둑질한 자는 도둑질한 것의 두 배로 배상을 치러야 할 것을 규정하는데(탈출22,6) 여기서도 두 배는 합당한 형벌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징계를 가하시고 심판을 내리시는 데 있어서도 공의에 입각해서 행하시지만, 징계와 심판의 자리에서 해방시키시는 역사를 이루시는 데 있어서도, 동일한 원칙에 입각해서 그 일을 행하신다. 

하느님의 공의를 채우지 못하고 불의와 거짓을 일삼던 선민이 징계와 심판의 자리에 떨어진 것처럼, 그들이 하느님의 심판을 충분히 다 받게 되면 더 이상 그들을 고난의 자리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건져 올리시는 것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이사야 40,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