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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금 말씀이 저에게 제발 빨리 /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8 조회수1,286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세 명의 유대인 할머니가 마이애미 해변에 앉아 아들 자랑을 한다. 첫 번째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내 던진다. “내 아들은 이 엄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몰라. 글쎄 작년 내 생일에 전 세계 크루스 여행 1등석 표를 2장 보내 주었지 뭔가.” 두 번째가 받아 넘긴다. “내 아들이 엄마 생각 더 할걸. 작년 내 생일에 아들이 여기 마이애미에서 성대한 생일잔치를 차렸지 뭔가. 어디 그뿐인가. 뉴욕에 있는 내 친구들을 죄다 초청하는 비행기 표까지 보내 주었다니까.” 세 번째가 일어서서 말한다. “뭘 그 정도 가지고. 내 아들만큼 날 생각하는 애는 없을 거야. 내 아들은 매주 세 번씩이나 시간당 120달러 정신과 의사에게 나를 데려간다네. 그런데 내 아들이 그 의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나? 글쎄 줄곧 내 이야기만 한다니까.”


이 유머는 유대인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병적인가를 꼬집고 있다. 유대인 의사 중에는 정신과가 가장 많은데 미국인들은 우스갯소리로 유대인은 정신과 의사 아니면 정신과를 찾는 환자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나. 신분 상승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왔던 미국 유대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천 년 전의 나자렛 처녀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다. 당신 자신을 비운 그 자리에 예수님을 받아 모셨다. 성모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행위의 주체이신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가 사는 이 차가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성모님은 그분께서 들어오시도록 당신의 문을 활짝 여셨다. 그 순명이 마리아와 온 인류의 삶을 확 바꾸었다.


예수님의 잉태에 대해서는 복음 곳곳에 소상히 나타난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그 말이 무슨 일까?’하고 곰곰이 되씹었다. 천사는 이어서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라며 마리아를 달랬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그분 존재의 믿음에 많은 두려움을 가진다.

 

사실 믿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은 인간 본능이다. 그 이유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에. 이는 자기 높임의 증거이며 자만심의 노출이기도 하다. 믿음은 어떤 절대자에 대한 조건 없는 복종심에서 나온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면서 어떤 절대자의 지배를 받아야만 우리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될 게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확신을 갖기 전에 먼저두려움을 가진다. 이것을 우리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천사가 알려준 잉태 소식은 남자를 알지 못한 그녀에게는 매우 두려웠을 것이고, 더 가슴 아픈 것은 예수님은 마리아가 당장은 바라는 아들이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이 몸은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마리아의 이 질문은 처녀인 자신에게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며.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겸손의 뜻이었다. 자기의 능력 밖이라는 것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이 저와 함께 계시고 그분의 총애로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될 아들을 낳을 기회를 주시겠다면 기꺼이 따르겠다는 복종의 의미도 지녔다.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듣고서는 과감히 두려움을 떨고는 대답하였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몸은 비록 연약한 처녀이지만 그분의 뜻이라면 감히 어떻게 마다할 수 있느냐와 일맥상통한다. 마리아의 말은 누가 뭐래도 순명하는 긍정의 의미이다. 이에 가브리엘 천사도 마리아의 복종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리라. ‘지금 하시는 말씀이 제게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재촉의 뜻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엘리사벳이 어떤 신비한 힘으로 아기를 잉태한 사실을 안 마리아는 수락한다. 하느님을 굳게 믿었기에 죽음마저 각오한 것이다. 우리도 나의 이해득실에 따라 주님의 뜻을 거부한 적은 없는지를 돌아봐야 하겠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 회의도 든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주님께서 계속 맡기시기에 야속함마저 느낄 때도. 그래도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그분에 대한 신뢰로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렇게 주님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갈 때,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깨닫게 되리라.

 

마이애미 해변에서 유대인 할머니들의 아들 자랑은 최근 우리네 치맛바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입시 설명회는 수험생보다 하나같이 똑똑하다는 한국 어머니들의 판이다. 자식들의 신분 상승을 위해 무조건 의사나 판검사 또는 특정 직업을 강요하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미국 이민 초기의 유대인 엄마의 전형을 판박이로 보는 것 같다. 그 부작용의 심각성이 이미 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자식의 신분 상승보다 그들의 자아실현을 존중해 주면 정녕 어떨까. 참으로 안타깝다.

 

나자렛 처녀 마리아도 극성스런 유대인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래도 나자렛의 흠 없는 처녀 마리아의 겸손과 순명의 정신을 본받아야하지 않을까! 자식 앞날을 저해하는 그 치맛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어딜 가도 극성이다. 마리아의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라는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다. 우리 모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평생 동정이신 성모님처럼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나자렛 고을의 마리아 아가씨가 가졌던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이 저에게 빨리라는 그 마음으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동정 잉태,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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