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9 조회수1,54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12월 9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이사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복음 마태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이제 저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서 돌아갑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좋은 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또한 주님의 따뜻한 사랑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새벽님들께서 많은 기도와

염려를 해주신 덕분이 아닐까 싶네요.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밴쿠버에서의 마지막

새벽 묵상 글을 시작합니다.
저는 갑곶성지에서

개 세 마리를 키웁니다.

이 개의 종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똑똑하고 너무나도

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처음에 이 개를 키우게

되었을 때 성지 안내견으로

키우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순례 오신 분들이

가봐야 할 곳을 개들이

안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포기했습니다.

풀어만 놓으면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신나게 뛰쳐나가기 때문이었지요.

 결국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한정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지 마라.’

는 말이 있습니다. 즉,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을 일에 힘과 기운을

쏟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종종 사람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입니다.

 무조건 틀렸고 자신은 무조건

맞다는 생각을

지고 계신 분입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좋은 의도도

나쁜 의도로 받아들이시고,

별 것도 아닌 것에 스스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서 공동체에

큰 혼란을 가져오십니다.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무조건

‘아니다’라고 하니 어떤 해결책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지 마라.’

는 말이 생각나면서 포기를 하게 됩니다.

결국 누구에게 손해일까요?

본인 스스로도 손해이며,

공동체 전체에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뜻과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메뚜기와

들 꿀만 먹으면서 회개를 촉구했지만,

사람들은 광야에서 회개의 삶을 사는

세례자 요한을 향해

마귀가 들렸다고 비판했지요.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면서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그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어떤 말과

행동도 그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기쁜 소식에

자신의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으로,

소극적인 마음이 아닌 적극적으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느낄 수 있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쓴 약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셔

 우둔함의 병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채 살아간다.

(코체프)

밴쿠버의 'Shannon' 폭포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최천호)

사람에게는 두 가지

근육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몸 근육과 마음 근육.
몸 근육을 기르려면

근육이 정상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무게보다 더 많은

부하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근섬유가

찢어지면서 상처가 나고

 회복이 되면서

근육이 성장하게 되죠.

마음 근육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에 치이고,

사랑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끊임없이 상처받고

힘들면서 단련됩니다.
최대한 많이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세요.

마음의 근육이

 더욱더 단단해 집니다.

 바람에 흔들릴 때도

마음을 단련시키다 보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자신감은 가지고

자괴감은 버리세요.

자신감은 코끼리도

들게 한다는 말도 있어요.

 그만큼 자신감은

노력보다 강합니다.
피아니스트의 실력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로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가수가 아무리 노래를

열심히 해도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로 좋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입니다.

남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은

나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남의 아닌 나의 시선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과 같으니까요.

 당당하게 살아가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쓸데없는 고집이나

집착은 버려야지요.

또한 부정적인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버리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을 더욱 더 기쁘게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스퀴매쉬입니다.

이곳에서 흰머리 검은 독수리를 봤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