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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9 " ~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9 조회수2,217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 11,16-19(대림 2주 금)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6-17)

 

 

 

   그들은 요한의 “회개의 세례의 선포”(마르 1,4; 루카 3,3)에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복음의 선포”(마태 4,23; 9,35)에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냉대 받고 외면당하고 업신여김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탄성에는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너머 비탄과 자조감마저 서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응답에로 부르는 더 강력한 호소입니다.

 

 

 

  이 비유의 뜻은 명료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는, 마치 요한의 외침에도 회개의 가슴을 치지 않고,예수님의 구원선포에도 기뻐 춤추지 않는 세대를 말해줍니다.

 

   혹 우리도 뉘우침의 눈물도, 복음의 기쁨도 없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폐쇄와 계시에 대한 배척의 뿌리에는 무관심과 영적무지를 넘어, 완고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완고함이란 마치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보고 입이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바닥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바로 세워놓고 보면 입도 있고 바닥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 뿌리에는 바로 보고자 하지 않는 비뚤어지진 마음이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결국, 완고함이란 사실을 바로 보고자 하지 않는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목이 뻣뻣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외침을 듣고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의 선포를 듣고도 진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먹보요,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라고 조롱합니다.

 

   사실, 이쯤 되면, 예수님의 사랑은 안타까움과 비탄을 넘어 이미 아픔입니다. 결국, 당신의 사랑은 춤추지도 곡하지도 않는 냉대와 완고함이라는 가시에 찔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됩니다. 춤추지도 곡하지도 않는, 냉대와 완고함이라는 가시에 찔려 흘러내리는 눈물이 됩니다. 사랑이 거부당한 아픔입니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냉대할 때,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완고할 때,

 

   그렇게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아니, 내가 내 형제를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은 그렇게 가시에 찔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

 

   다윗이 주님의 계약 궤 앞에서 춤추었던 것처럼,제가 오늘 춤추게 하소서!

 

   당신의 지혜가 우리 삶의 노래가 되고 춤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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