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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10 토/ 눈을 뜨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불행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9 조회수1,296 추천수6 반대(0) 신고




대림 2주 토, 마태 17,10-13(16.12.10)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마태 17,12)





The coming of Elijah







눈을 뜨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불행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에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오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거룩하신 변모와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하면서, 메시아가 오기 전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율법학자들의 주장을 생각하고 그분께 여쭙습니다(17,10).

엘리야는 횃불처럼 타오르는 불이 되어 주님의 영광과 말씀을 전했습니다(집회 48,1. 4). 그는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백성들에게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징벌을 예언했고, 왕이라 할지라도 정의롭지 못하고 하느님을 저버릴 때에는 온 나라에 기근과 재앙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카르멜 산에서 아합 왕이 숭배하는 바알을 받드는 예언자 850명과 대결하여 이김으로써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1열왕 18,20-39).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가 산 채로 승천해 있다가(2열왕 2,11)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에 다시 와서 백성을 화해시키고 열두 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고 믿었습니다(말라 3,1. 23 참조).

제자들이 이런 율법학자들의 생각에 대해 묻자,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마태 17,11-12)고 하십니다. 곧 두 번째 엘리야인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러 왔는데도 주님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율법학자들처럼 엘리야의 몫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임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생각한 엘리야와 메시아를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눈을 뜨고도 이미 와 계신 메시아를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과 영혼의 어둠 때문입니다. 현세 이익을 챙기고 셈하는 데는 재빠르지만 주님을 보는 데는 아둔할 때가 적지 않지요.

주님께서는 이 대림절에 영(靈)의 눈을 뜨도록 초대하십니다. 눈을 뜨려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무엇을 알아보지 못하는지 기도 안에서 성찰해야겠지요. 사실 우리는 눈을 뜨고 보면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자신이 만들어낸 메시아가 아니면 알아보지 못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그 결말은 죽음뿐임을 기억해야겠지요.

우리 모두 현세를 관통하고 세상을 정화하시는 주님을 알아보는 예민하고 깨끗한 영의 눈을 뜨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만의 사고의 틀과 탐욕적인 시선을 거두고, 신앙을 통해 나만의 현세적 행복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이웃 사랑과 공동선을 먼저 추구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랑도 선행도 정의마저도 자기 식대로 하려는 버릇도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눈을 뜨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신념의 허상과 왜곡된 사고의 틀, 속화된 욕망의 흐름에 매여, 구원의 선물을 제멋대로 다루는 불행한 우리가 되지 않도록, 깨어 자신을 살피는 거룩한 자기 돌봄의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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