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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0 조회수1,18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집회 48,1-4.9-11

그 무렵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

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아날 것입니다.

복음 마태 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

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드디어 4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역시 집이 편하네요.

그래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지를 떠나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하고 돌아오니 또 다른

활력을 얻게 됩니다.

올해 휴가를 한 번도 가지 못했는데,

특강을 위해 다녀온 여정이라도

이 역시 휴가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짧은 일정 역시 어렵고

힘든 일정이 아니라,

기쁘고 행복한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갑곶성지에서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렸을 적에 저희 집에는

제비 집이 있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에

제비 두 마리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물어 오더니만,

어느 순간 작고 예쁜 집이 생기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둥지를 짓는 모습에

제비들이 멍청하다 싶었습니다.

둥지를 짓던 날은 기상 조건이

별로 좋지가 않았거든요.

바람도 불었고 빗방울도

떨어지는 날이었습니다.

 맑은 날도 많은데 왜 그런 날을

 골라서 고생을 할까 싶었지요.

맑은 날을 따질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힘들게 둥지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책을 보다가

새들이 일부러 비바람이

부는 날에 둥지를 짓는다는

 글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새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새들이 비바람이 부는 날을

 일부러 고른다는 것이었지요.

 바보 멍청이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어떤 악천후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랍니다.
어렸던 저는 악천후에

둥지를 짓는 제비를 향해서

‘어리석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제 말을 알아들었다면

제비는 과연

어떤 말을 했을까 싶더군요.

아마 제게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라면서 비웃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일부러 악천후인 날씨를

고른다는 말에

‘정말로 지혜롭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함부로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이런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엘리야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들이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자신의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언자는 이러할 것이다’,

‘예언자는 이러해야 한다.’라는

 기준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다가온

예언자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판단은 더 나아가

주님 역시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실제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던 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이웃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일 역시 자신의 기준을

내세워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스스로의 판단들이 얼마나

부족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 것.

첫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그 정확성을

그리 신뢰할 만하지 않다.

(이드리스 샤흐)

제비집입니다.

분노를 대하는 방법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요즘에 읽은 책에

나오는 글귀였습니다.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이

이런 방법으로 분노를

조절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든 분노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누이트들처럼 무작정 걸어서

긴 막대기를 꽂아두고

 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을 더욱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노를 대하는 나만의

방법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분노를 대하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한 번 소개를 해보시죠?

밴쿠버 시내가 보이는 곳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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