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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1 조회수1,19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12월 11일

대림 제3주일

제1독서 이사 35,1-6ㄴ.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제2독서 야고 5,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복음 마태 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예전에 처음으로

자전거 일주를

했을 때가 떠올려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저 혼자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여정이었지요.

처음 해보는 것이라 겁도 났지만,

 잘 준비한다면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열심히 짐을 꾸렸습니다.

혼자만의 여행이라고 해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꽤 많더군요.

식사비를 아끼기 위해서

코펠과 버너를 준비했고,

매일 미사를 위한

미사가방도 준비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자전거 복장이 아닌

일반 평상복도 가방에 실었습니다.

비상약, 지도, 랜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mp3플레이어까지

조금이라도 필요할 것 같은 것은

모두 가방에 넣었습니다.
너무 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국일주를 했던 분들이

쓴 책을 봐도 이 정도는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는 말에 어떻게든

가방에 넣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준비했던 짐들을

 자전거에 달고 또 등에

짊어지고 출발했습니다.
이 상태로 하루를 갔습니다.

하루가 지난 뒤에

비로소 깨닫습니다.

어떤 물건을 가방에 담느냐보다

무엇을 두고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괜히 쓸데없는 것을 가방에

구겨 넣어서 혹독한 대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음날 거의 모든 짐들을

과감하게 택배로 보냈습니다.

그 뒤로 부산까지 얼마나

편안히 갈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만약 모든 짐들을 다 들고

갔었더라면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과감하게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꼭 행복하고 편안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많은 것을

가지려고만 합니다.

또한 내게 필요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남들이 누리는 것이

싫다고 꼭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과연

행복하고 편안할까요?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바라보면서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묻습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 역시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의심을 품고 있었을까요?

 예수님께 세례까지 베풀 때에

이미 알아봤던

 요한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그 역시 들리는

소문에 흔들렸던 것입니다.

죄인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신다는 소문에 의심을

 갖게 된 것이지요.

 아마도 세례자 요한은

 죄로 물들어 있는 이 세상을

벌하시는 메시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심판관이 아닌 사랑을

나눠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벌하는 분이 아니라

용서를 주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를 했음에도

의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과연 오실

주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먼저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준비를 하면서

사랑과 평화의 주님임을

기억하면서 기다릴 때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인정한 유일한 독재자는

 내 안의 작은 목소리 뿐이다.

(마하트마 간디)

세례자 요한이 갇혔다는 마케루스 요새입니다.

저승에 간 흥부와 놀부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인데요.

이 글을 보시고 한 번

실컷 웃어보시길 바랍니다.
저승에 간 흥부와

놀부가 하느님 앞에 섰다.
“흥부 놀부는 들어라.

 너희 앞에 똥통과

 꿀통이 보이느냐?

각자 어느 통에 들어가겠는고?”
놀부가 잽싸게 먼저 말했다.
“저는 꿀통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럼 놀부는 꿀통에

들어가고, 흥부는 똥통에

들어갔다 나오너라.”
두 사람은 하느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상대의 몸을 핥아라.”
그 말에 놀부는

죽을상이 되었다.

잠시 후 흥부아내와

놀부아내가 하느님 앞에 섰다.
“흥부아내와 놀부아내는

 각자 어느 통에 들어갔다

 나오겠느냐?”
놀부아내가 놀부를

 슬쩍 쳐다보니 놀부가

 똥통으로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놀부아내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말했다.
“대왕님 저는 똥통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냐? 그럼 놀부아내는

 똥통에 들어가고,

흥부아내는 꿀통에

들어갔다 나오너라.”
두 여인은 하느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다.
“자, 지금부터 흥부와

놀부는 각자 자기 아내와

 마주 서서 아내의 몸을

 깨끗이 핥아라.”
놀부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하느님 앞에서 편법이 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의 논리를

 앞세워서 각종 편법으로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할까요?

나중에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큰 코 다치지 않을까요?

 

성탄이 가까워졌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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