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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슨 권한으로 했는가?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2 조회수992 추천수10 반대(0) 신고


 

무슨 권한으로 했는가?

 

- 윤경재 요셉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모르겠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태 21,24~27)

 

 

 

 

어린왕자 작가로 유명한 생떽쥐베리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한 미소라는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그 소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전투 중에 적에게 포로가 되어서 감방에 갇혔다. 간수들의 경멸적인 시선과 거친 태도로 보아 다음 날 처형될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으며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한 개비를 발견했다.

 

손이 떨려서 그것을 겨우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성냥이 없었다. 그들에게 모두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간수를 바라보았으나 나에게 곁눈질도 주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할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는 나직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혹시 불이 있으면 좀 빌려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간수는 나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까이 다가와 담뱃불을 붙여 주려 하였다.

 

성냥을 켜는 사이 나와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무심코 그에게 미소를 지여보였다.

 

내가 미소를 짓는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가슴속에 불꽃이 점화된 것이다!

 

나의 미소가 창살을 넘어가 그의 입술에도 미소를 머금게 했던 것이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준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단지 간수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속에도 그러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도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고말고요.’

나는 대답하면서 얼른 지갑을 꺼내 내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람 역시 자기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등을 애기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될 것과 내 자식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일어나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나를 밖으로 끌어내었다. 말없이 함께 감옥을 빠져나와 뒷길로 해서 마을 밖에까지 그는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러고는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뒤돌아서서 마을로 급히 가버렸다.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인간 본성 안에 하느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글입니다. 죽음의 순간에서 초연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힘은 원망과 회한을 모두 내려놓은 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맑은 영혼은 두 눈을 통해 빛났을 것입니다. 맑은 눈빛과 순수한 미소는 그 누구라도 무장해제 시키는 마력이 있습니다. 돌처럼 단단하고 얼음처럼 차가왔던 마음도 진심이 담긴 미소 앞에서는 다 녹아내립니다.

 

사형을 목전에 둔 사람이나 그걸 지켜봐야 하는 사람 모두 고통의 심연에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 심연의 바닥을 치고 나니 불현 듯 미소라는 공감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답고 원초적인 사랑인 자식 사랑이 둘 사이에 가로막혔던 장벽을 열어젖혔습니다. 사랑 앞에서는 사상과 의무라는 걸림돌도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조용히 배어 오르는 눈물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정화시킵니다. 막혔던 시야를 열어 줍니다. 어떤 행동이 옳은 일인지 판단을 내리고 실행할 힘을 줍니다.

 

고통(passion)은 함께(com) 나누면 가벼워지고, 행복은 함께 나누면 더 커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compassion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든 말씀과 행동의 근거가 바로 compassion입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띤 것이 아니라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본성의 떨림으로 저절로 솟아오르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굳게 닫힌 감옥 문을 열어준 권한은 바로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예수께서 그렇게도 강조하신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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