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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톨스토이의 질문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3 조회수1,203 추천수8 반대(0) 신고



 

톨스토이의 질문

 

- 윤경재 요셉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28~32)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나이 오십을 분기점으로 삶의 모습이 확연히 나뉩니다. 백작 가문에서 태어나 쉰 살 이전까지는 귀족으로 삶을 사랑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였다면, 쉰 이후의 톨스토이는 위대한 인생의 교사였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탐구한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5년여에 걸쳐 탈고하면서 인간 심연의 저 어두운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죽음을 숙고하게 된 것이 계기라고 평합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다가 자기가 창조한 인물 속에서 인간이 지니는 아픔을 공감하였습니다. 그러고는 깨달은 바 있어 소설 속에 자신의 삶을 이입한 것입니다.

 

평론가 박정태씨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대저택에서 온갖 사치를 부리며 사랑하는 젊은 애인과 로맨스를 즐겼던 주인공 안나는 실상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불륜을 저지른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나이 많은 전 남편과의 이혼 문제는 늘 그녀를 옥죄었습니다. 연인 브론스키의 아이를 배었지만,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해 마약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안나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다가 끝내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두 연인의 피해자 격인 키티는 안나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했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키티는 젖이 불어 오르자 자기 아기가 배가 고플 것이라 알아차리고 마음씨 착한 남편 레빈을 생각하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아가야 너도 그저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작은 일에서도 깊은 만족을 느끼는 모습입니다. 과연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요?

 

레빈은 부유한 지주였지만 직접 농부들과 호흡을 맞춰 일하며 온몸에 땀을 흘립니다. 들판의 풀을 베면서 삶의 극치인 무아지경을 체험할 정도입니다.

 

그럴 때는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자체가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행복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순간순간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기차가 덮쳐오는 마지막 순간 안나는 오싹한 공포를 느끼며 묻습니다. “여긴 어디지? 난 뭘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그러고는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라고 중얼거리면서 생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란 하느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심판의 권리를 스스로 떠 안음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이 되고자 했던 죄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자기의 분신 격인 레빈을 통해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여기에 있는가?”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가 행복하길 원하였지만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일시적 사랑도 결혼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행복은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안나를 냉정하게 죽였습니다. 쉰 살 이전의 자기를 죽인 셈입니다. 그리고 레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톨스토이는 소설을 통해 자기의 삶을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선 것입니다. 그렇게 쉰 이후 남은 생을 살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인간의 운명과 인류의 고통을 생각하며 오직 양심에 따라서만 살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작동시키는 제1원인을 이해하고 싶어했고, 나아가 자신과 인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떠올리기 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생을 마치기 며칠 전 자신의 딸에게 하느님은 한계가 없으시다. 모든 사람은 그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진리는 오직 하느님께만 존재한다.”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또한 그는 기독교의 영성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과 죄인들까지 모두 사랑하며,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삶의 의미를 숙고하며 변화하는 시기를 맞습니다. 누군가와 만남이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힘든 역경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톨스토이처럼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세리와 창녀는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자신들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자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할는지 질문하고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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