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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3 조회수1,16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스바 3,1-2.9-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2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9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10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11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복음 마태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버스를 타고

강원도의 멋진 산으로 떠났습니다.

이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자연경관이 너무나 멋진 지역,

산세가 아름다운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버스 안에 타고 있었던

등산객들은 이 광경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뜨거운 햇빛에 눈이 부셔서

버스의 커튼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잠들었고,

 몇몇 사람들은 누군가를 향해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말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도착해서 오를 산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이 계속해서

감탄사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홀로 앉아서 커튼을 살짝 걷고

창밖의 멋진 광경을

보고 있었던 사람이었지요.
물론 이 등산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잘 도착해서

등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이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집에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가 아닐까요?

따라서 중간에 가는 길에

보게 되는 아름다운 경관 역시

이 등산객들이 느껴야 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스 안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커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커튼을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음속에 커튼을 치고 있어서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합니다.

대신 쓸데없는 말과

행동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마음의 커튼을 과감하게

걷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보면서 자신 역시 겉과 속이

같은 사람,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일반적으로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은 정의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지만 행하는 것,

반대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낫겠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정말로 열심히 성당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을 봅니다.

그런데 실제 성당 밖에서의 생활은

성당에서와는 정반대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의 커튼이

쳐져 있는 사람으로,

바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신앙생활을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데 적극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커튼을 걷어내는,

 복음에 등장하는

맏아들의 모습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어떤 아들의

모습을 더 좋아하실까요?
실제로 많은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에 따른 의무도 많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받은 은총의 숫자에 따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지 않으면 구원의 길은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눈먼 것이 아니다.

 더 적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본다.

다만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더 적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랍비 줄리어스 고든)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달음

(앤소니 드 멜로, ‘깨침과 사랑’ 중에서)

깨달았다고 알려진

훌륭한 선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물었어요.
“스승님, 깨달음에서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선사가 답했습니다.
“글쎄, 이렇게 말하겠네.

깨닫기 전에

나는 우울하곤 했지.

깨달은 다음에?

나는 계속 우울했어.”
당혹스럽죠?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다음이나

우울증은 변함없어요.

다만 우울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선사는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행복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울증이 계속되더라도

여러분은 평온하고

침착할 수 있어요.

우울증과 싸우지 않고

우울증에 낙심하지 않으며,

우울증 때문에

방해받지 않습니다.

우울증과 더불어 평온합니다.

바로 그것이 다른 점입니다.
맞습니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 자체를

바꾼다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우울증 때문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제 동창신부가 있는 수리산성지에 다녀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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