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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14 수/ 의심과 절망이라는 이름의 암세포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3 조회수1,327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기념 루카 7,18ㄴ-23(16.12.14)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루카 7,22)





The Messengers from John the Baptist







의심과 절망이라는 이름의 암세포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인(마태 3,4) 요한은 신원의식이 뚜렷했습니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요한 1,2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30)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마태 3,11)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요 심부름꾼으로 인식하고 자기 소명에 헌신하였습니다.

그 무엇보다 더 먼저 하느님의 뜻을 중요시하며 실행하던 그가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합니다(루카 7,19).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보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위한 배려였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예수님 안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어 흔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혼란과 의심에 떨어진 이들이 보도록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17,21-22) 예수님께서는 행동으로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시며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17,23)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선포합니다. 주님은 빛과 어둠을 창조하시고, 행복과 불행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이사 45,7), 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45,21).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뜻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잠깐 동안만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동반자요 주인이십니다.

이 사실을 확고히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 어떤 풍파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이 고달파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 고통스럽다가 말 할 여유조차 없이 극심한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지요. 그럴 때 믿음이 저 뿌리부터 흔들리고 의심이라는 암세포가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의식하지 못할 때에도 주님께서는 변함없이 사랑 지극한 눈길로 나를 지켜보십니다. 내가 주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통째로 내팽개쳐버리는 그 고통과 한숨소리의 한복판에도 그분께서는 함께하십니다. 함께하시며 나와 함께 신음하고 함께 십자가를 져주십니다.

우리가 고통의 바다를 헤매는 것은 죄가 많아서도, 주님께서 내 안에 오시지 않거나 내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인간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고 아무런 조건도 없는 주님의 사랑은 나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나의 삶과 죽음의 주인이시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의 선물을 주시며 사랑으로 품어주심을 믿어야겠습니다. 의심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는데서 시작됩니다. 사랑이 약해지면 두려움이 싹트게 되지요. 이것이 우리 삶을 망치는 암세포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도 영혼의 질병과 악령에 시달리고 눈먼 나를 해방시켜주실 수 없음을 알아차려야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고히 믿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않고 앞만 보고 힘차게 달려가는 ‘희망 달리기’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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