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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4 조회수1,394 추천수3 반대(2) 신고

 

2016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이사

45,6ㄴ-8.18.21ㅁ-25

6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8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다.

땅을 빚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

그분께서 그것을

굳게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혼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빚어 만드셨다.

내가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21 나 주님이 아니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22 땅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복음 루카 7,18ㄴ-23

그때에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여러분들은 주먹밥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물의 양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주먹 크기의 주먹밥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물의 양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냥 주먹밥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벼농사를
지어 쌀을 추수할 때까지 필요한
물의 양까지 실제로 계산하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글쎄 자그마치
270리터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드럼통
하나에 보통 200리터를
담을 수 있지요.
그렇다면 거의 한 드럼
반 정도의 물이 있어야
주먹밥 하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주먹밥 하나만
바라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처음부터 전 과정을
모두 생각하면 갑자기
 주먹밥 하나도 얼마나 소
중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필요 없고
쓸데없다면서
섣부르게 평가할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의미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떤 것을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섣부르게 내리곤 합니다.
‘저 사람 왜 그래?’,
‘저런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저 사람과는
도무지 맞지 않아.’
등등의 말로
판단하고
또 단죄할 때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람의
이면에 있는 모습과
또 그 마음까지
생각했었는지
먼저 따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정말로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서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여쭙게 합니다.
그 역시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위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정말로 구세주가 맞을까?’
라는 의심을
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눈에 비쳐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넘어
 그 뒤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사랑을 위해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사랑을 느껴서
 기쁘게 살 수 있도록
하시는 모습을 보
아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세례를 주었던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그 역시
 겉모습만 바라보는 순간에
다른 이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의심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겉모습만을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때로는 단죄하는
 모습으로는 절대로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넓은 마음을 통해서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 하나
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절절하게 체험한다면
남을 바꾸려고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소중한 관계를
낭비하는 일은 없다.
(공지영)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겨울에 한 해가 바뀌는 이유.
(공광규)
우리가 겨울에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 것은
일부러 하느님이
그렇게 계절을 가져다
놓은 것일 거야
사람들이 좀 추워하면서
반성하면서 긴장하면서
눈처럼 부드럽게
시련을 견디고 살얼음판도
좀 걸어 보라고
무엇보다
따뜻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른 사람의 난로가
되어 주는 사람인가를
시험하려는
하느님의 참으로
오래고 오랜 계획일 거야
추울 때 모든 것이
얼어붙었을 때 그 사람을
보려는 것이지
겨울에도 눈꽃을
 피우는 나무의 의지를
보여 주고
얼음장 밑에서도
겨울을 잘 버티는 물고기와
수초도 보여 주고
일만 하지 말고
잠깐 멈추어 삶의 도구를
수리하라는 것이겠지
성장만 하지 말고
이불 속에서 움츠려
꿈도 꿔 보라는 명령이겠지
사람들이 함부로
헌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까 봐
염려가 되어서
하느님은 겨울에 한 해를
 바꾸는 것일 거야
한 해가 바뀌는 이유.
여기에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 담겨 있군요.
조금 더 깊이
또 더 넓게 생각할 때,
하느님도 보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갑곶성지의 성탄트리.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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