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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15 목/ 현찰보다 훨씬 더 좋은 것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4 조회수1,482 추천수4 반대(0) 신고




대림 3주 목, 루카 7,24-30(16.12.15)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루카 7,24)





John the Baptist Preaching in the Wilderness







현찰보다 훨씬 더 좋은 것

“말보다는 현찰이 낫고, 날아가는 독수리보다는 손안에 든 새 한 마리가 낫다.”(‘돈키호테’ 중)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을 여러 가지로 알아들을 수 있겠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보다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낫다는 뜻도 있다고 봅니다. 현대인은 이런 의식에 너무 깊이 젖어있는 듯합니다.

삶이 고달프고 여유가 없을수록 ‘하느님이 밥 먹여 주느냐?’, ‘신앙생활 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말을 생각 없이 던지기도 합니다. 이 대목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느냐 아니면 불행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 당장 내 손안에 잡히는 것에서 달콤한 맛을 느끼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오늘 제 1독서를 보면 주님께서는 소박맞아 버림받은 여인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부르시고 그에게 당신의 사랑을 약속하시며 그 사랑은 하늘나라에서 더 클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이사 54,7-8)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늘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다 하여도 넘치는 사랑을 주십니다. 심지어 내가 약해지고 시련을 겪고 위험에 떨어질 때에도, 망각의 늪에서 당신의 사랑을 잊고 어둠 속을 헤맬 때에도 늘 함께 하시지요. 그러나 이 영원한 진리를 믿기는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육신을 지니고 창조된 탓에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영원한 진리와 사랑 보다는 당장 감각적으로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것에 쏠리기 쉬운 까닭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영의 눈을 뜨고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 하고 그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루카 7,24-25) 그리고는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7,30) 하십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이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는 것은 주님을 갈망하지 않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으며 그분 안에 머물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내팽개치고 눈에 보이는 현세 유익과 자기만족을 추구함으로써 행복 저편으로 아스라이 멀어져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감각세계의 것과 물질이 전부인양 착각하며 거기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이 온 힘을 다하여 설파한 회개와 사랑에 비할 수 없이 크고 깊고 넓은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끄는 것은 바로 그것임을 다시 기억했으면 합니다.

오늘도 고통스럽고 불평들과 불의로 가득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꿔주시는 주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는 복된 날이길 바랍니다. '이왕이면 현찰이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영성체송) 지혜로운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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