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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7 조회수93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사 54,1-10

1 환성을 올려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즐거워하여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혼인한 여인의

아들들보다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3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

4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리라.

네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네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5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8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9 “이는 나에게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10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복음 루카 7,24-30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한 어린이가 혼자 장난을 치며
 놀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서
얼른 다가갔더니만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면서 우는 것입니다.
엄마는 “왜? 누가 때렸어?”
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아이는 말은 하지 않고
근처에 있는 탁자를 가리킵니다.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습니까?
아이가 놀다가 무릎으로
 탁자를 들이받은 것이었지요.
이때 엄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탁자를 탁 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쁜 탁자 같으니라고.
우리 예쁜 아들을 왜 때렸니?”
이런 엄마의 말과 행동에
 신나게 울던 아이가 울음을 멈춥니다.
그리고는 아이 역시 탁자를 치면서
“나빠!”라고 말하지요.
 몇 차례를 계속해서 같은
행동과 말을 하고서는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웃으면서 신나게 놉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이러한 유치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솔직히 탁자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탁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아이가 와서 부딪쳤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다면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묻지요.
“누가 너를 이렇게 힘들게 했니?”
이 말이 엄마가 아이에게 말하는
 “누가 때렸어?”
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힘든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내 부모, 내 직장동료,
내 본당신부…….”
잘 생각해보면 나한테
원인이 있었을 때가 더 많습니다.
내 입장으로만 받아들이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사람들 사이 안에서
 생긴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분에게 상대방과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면 80% 이상이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보기에, 그리고
어려워서 아예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이 때의 유치함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누군가를 비난하는데
여전히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비난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까?
이제까지 자신들의 활동에
전혀 제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고,
예수님이 나타나면서 자신들의
활동에 이상이 생겼지요.
스스로의 독단과 위선은
바라보지 않고, 세례자 요한을
비판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지울 수 없는
죄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자기를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할까요?
끊임없이 남을 비판하는
 유치한 신앙인이 되시겠습니까?
그 유치함이 세례자
요한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랑으로 하는 희생은
 결코 고되지 않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다.
(밀턴)
작년 이맘때에는 더운 곳에 있었네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팻 슈나이더)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옷들이 공손하게 옷장
안에서 기다리는 일
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 가는 일
수건이 등의 피부에서
물기를 빨아들이는 일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런데 정작 인간은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너그러울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작년 사진을 보다가...
호주에 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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