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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2.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19 조회수1,31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판관 13,2-7.24-25

그 무렵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복음 마태 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어떤 책에서 본 글인데,

멕시코의 한 부족은 어떤

특정한 돌을 만지거나

건드리게 되면 죽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분명히 미신이라고

치부하고서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부족은

이에 대한 믿음이

아주 대단하다고 합니다.
한번은 한 어린이가

뛰어놀다가 이 돌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 순간 어린이는 사색이 되어

 펑펑 울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린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선교사로

들어온 신부님을 찾아가서는

돌을 건드린 자신의 아들이

곧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병자성사를 달라고 청했지요.
사연을 들은 신부님께서는

“이것은 미신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별 일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었지요.

다음 날 아침에 이 어린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부님의 말씀처럼

아무 일도 없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슬프게도 이 어린이는

정말로 죽은 것입니다.
돌을 건드려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요?

그 부족 사람들은 돌을

건드려서 죽은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쩌면

스스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어머니를

 비롯한 부족 사람들 모두가

죽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믿는 데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처럼, 잘못된

믿음 역시 실제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약한 사람들이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대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도

이 믿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지는 증명된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연구진은 1시간의 기도나

묵상과 같은 명상만으로

 고통이 40퍼센트,

불쾌감이 57퍼센트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반해 병원에서 주는

진통제를 통해서는 25퍼센트의

고통만을 줄일 수 있다고 하지요.

즉, 기도나 묵상이 진통제보다도

훨씬 효과가 뛰어나고

또 중독성도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는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고

의심해서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나이는

너무나 많았고,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지요.

 따라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의심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전능하신 하느님의 일이

불가능하다는

의심은 버려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믿음을

통해서는 제대로 주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을 보일 때 내게

필요한 것을 주님의 힘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C.쿨리지)

어제 2016년의 마지막 특강을 마쳤습니다.

행복의 완성

(최천호)

행복이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법이죠.
누군가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주면 됩니다. 
행복의 완성은 내 것을

채우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일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만 찾지 말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세요.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으세요.
남에게 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남에게 주는 일을

게을리 하면
내게 필요 없는 것

조차도 남에게

주지 못하게 됩니다. 
아주 큰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다정한 미소,

따뜻한 손길,

마음이 담긴 한 마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글을 보니 행복의 완성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님을 깨닫습니다.

 어려울 것이라는

지례짐작으로

행복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16년 마지막 특강을 했던

인천교구 원미동 성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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