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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인의 모범이신 마리아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0 조회수1,062 추천수6 반대(0) 신고



 

신앙인의 모범이신 마리아

 

- 윤경재 요셉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남성교우들과 이 대목 묵상 나누기 했을 때 매번 질문 받는 내용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즈카르야 두 사람이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소식을 들었지만,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리라는 책망을 들었고, 성모님은 처음부터 은총이 가득하다는 찬미를 받으셨는데 그 차이가 무엇 때문이냐는 것입니다. 또 두 분이 천사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것 같은데 그 결과가 전혀 다른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질문입니다. 역시 남성분들이 가진 분석적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즈카르야는 아들이 없어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오랫동안 청원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청원을 받아주시고자 가브리엘 천사가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뜻은 천사에게 자기가 이해할 수 있게 증거를 보여 달라는 요청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의심하면서 자기와 아내가 나이가 많다는 인간적인 이유를 댑니다.

 

사실 즈카르야는 그 일을 간절히 소원했었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 포기 상태에 이르렀고, 속마음은 과연 이루어질까하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청원기도하면서 자주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의구심이 생기는 오류를 예방하고자 9일 기도는 청원기도와 감사기도가 한 쌍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인 마리아는 한 번도 아들을 원한 적이 없었으니 꿈에도 보지 못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마리아는 은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마리아는 속 깊은 성정대로 천사의 인사말에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태산이라고 처녀인 자기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은 의구심이 아니라 놀람의 표현입니다. 이치를 따져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인간의 내면을 읽을 줄 아는 가브리엘 천사는 곧바로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설명해줍니다.

 

순수하고 어린 마리아이지만, 이 일이 가져올 파장을 잘 알았습니다. 율법에 대한 이해도 높았고 매사를 골똘히 생각하는 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용의주도한 루카 저자는 복음서 곳곳에 속 깊은 마리아의 이런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암호문처럼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마리아가 주저 없이 곧 바로 응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단단한 각오가 배어나오게 기록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한마디 즉각적인 순종의 말씀 덕분에 전 인류는 구세주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세를 지닌 한 여성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점이 바로 마리아가 신앙인의 모범이라고 찬미 받는 이유입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색다른 관점에서 성모 마리아를 이야기 합니다. 그전까지 유다인은 하느님을 그분이라는 삼인칭으로 불렀는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하느님을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삼인칭은 나와 상관없는 그분이라는 뉘앙스가 담겼다고 엑카르트는 설명합니다. 이인칭은 나의 대화 상대방을 부를 때 쓰는 호칭입니다. 나와 직접 연관된 분이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이런 태도를 받아들인 신앙인들에게 마리아의 모습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내 안에 잉태하신 첫 사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도 마리아를 본받아 각자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하나 됨을 마리아의 모습에서 찾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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