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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순어법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2 조회수1,30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모순어법

 

- 윤경재 요셉

 

 

 

유치환은 시 깃발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표현했고, 김영랑 시인은 모란꽃을 보고 찬란한 슬픔이라고 읊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부드러운 직선이란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아우성이 어떻게 소리가 나지 않고, 직선이 어찌 부드럽겠습니까. 슬픔이 어떻게 찬란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모란꽃처럼 화사하고 찬란한 꽃이 질 때 보이는 아름답고도 슬픈 모습을 이렇게 앞뒤가 서로 모순되게 표현하여 그 느낌을 더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시가 갖는 독특한 표현양식입니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언뜻 비합리적인 두 사유를 한데 뭉쳐 더 깊은 감성으로 고양시키는 것을 모순어법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 말씀 중에 이 모순어법이 자주 나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예수께서 모순어법을 즐겨 사용하신 이유는 하느님의 사업이 인간의 생각처럼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우리더러 한 번 더 심사숙고 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경솔하게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판단하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죄인들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것 자체가 모순어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하셨습니다. 치욕 한 가운데서 인류에게 판관으로서의 권능을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 곧 마니피캇도 모순어법을 사용합니다.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모순어법은 대립의 포용을 전제로 합니다. 대립하는 것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서 통합하는 마음이 담겨야 포용할 능력이 생깁니다. 포용을 하면 이제 사건과 사물을 오해나 왜곡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사건과 사물에 대해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포용이란 균형, 조화, 치우치지 않음을 말합니다.

 

포용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문제 해결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정열을 쏟게 됩니다. 어려운 과제나 일을 만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곤혹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목표보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항상 중요하고, 자기 훈련과 일의 숙달이 무엇보다 우선 합니다. 포용하는 사람들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형태의 대답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차별과 편협을 초월합니다.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에 눈을 뜸으로써, 거부하기보다는 포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겸손과 청종하는 자세가 바로 마니피캇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마니피캇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한 분이라야 아무거리낌 없이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의 미래를 향한 열린 자세를 드러낸 것입니다. 지금의 고민보다 미래에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알려주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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