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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의미를 찾은 즈카르야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3 조회수918 추천수8 반대(0) 신고


 

삶의 의미를 찾은 즈카르야

 

- 윤경재 요셉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루카 1,57~63)

 

 

 

 

- 인간은 근본적으로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의미는 쾌락보다 더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다. - 빅터 프랭클

 

 

인간은 살아가면서 종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미를 찾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합니다. 젊어서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면 나이 들어서는 그런 개인의 욕망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지 깨닫기 때문입니다. 보석, 재산, 지위, 명예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이런 점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신비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의미의 본질은 연결 짓기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두 존재를 연결하여 관계를 덧씌우는 것입니다. 그 연결성은 가시적 세계에 실재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임의로 마음속에서 부여하거나 인식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자신을 다른 존재와 연결할 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 곧 가족, 직장, 지역사회, 국가, 인류 또는 신념, 가치, 신 등과의 연결 속에서 그것을 위해 공헌하면서 존재한다는 믿음이 바로 인생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지 연구한 심리학자 로버트 에몬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여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네 가지 공통적인 주제를 설명합니다.

 

첫째가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가족과 연인을 비롯한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눈 사랑과 유대감을 인생의 중요한 의미로 여겼습니다. 특히 깊이 있고 긍정적인 인간관계는 행복감을 주고, 인생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둘째는 자신이 이룬 성취와 업적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직업적이든 개인적이든 자신의 삶에서 이룬 성취와 업적을 인생의 중요한 의미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나 개인적 성취 또는 사회적 업적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려 했습니다.

 

셋째는 후세대를 위한 기여와 공헌입니다.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후손을 통해서 가족이 번성하는 것, 가족과 사회를 위해 물질적 또는 정신적 유산을 남기는 것, 자신의 직업분야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일, 사회와 국가를 위해 기여하고 공헌하는 일들이 이에 속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녀를 비롯한 후세대를 양성하고 그들을 위해 후원하는 일을 인생의 중요한 의미로 여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또는 영적인 추구입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탐구하며 추구하는 일, 자신의 유한성을 초월하기 위한 영적인 노력, 신과의 깊은 교류, 종교적 헌신을 인생의 중요한 의미로 여겼습니다.

 

즈카르야는 사제 가문에서 태어나 주님을 경외하며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부인 엘리사벳과의 관계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금슬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들의 존재는 특별합니다. 자식은 사람들이 자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귀중한 이유가 됩니다. 가문을 잇고 재산을 물려주며 생물학적 유전자를 물려준다는 의미 외에도 유다인에게는 나이 들어 부모를 공양할 자식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께 저주받았다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부부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한 것입니다.

 

그 결과 뒤늦게나마 엘리사벳이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 지었습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즈카르야 집안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요한이 인류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탄생은 요한과 그 부모만 연결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그저 즈카르야 가족에게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전 인류에게 알리는 역할을 그 아기를 통해 하셨습니다. 아기 요한은 하느님과 전 인류를 연결 짓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립니다. 연결 고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어딜 가야 찾을는지 몰라서, 너무 가늘다고, 자기 멋대로 살기에 불편하다고 등등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스스로 차단합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결코 그 연결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계속 관계 덧씌우기를 시도하여 결국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엘리사벳이 아기를 밴 열 달 동안 내내 침묵 피정을 통해 자신 삶의 의미를 찾았고, 끝내 풀린 혀로 그 의미를 찬양하였습니다. 이 점이 우리가 매일 즈카르야의 노래를 성무일도를 통해 부르는 이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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