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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애의 의미를 깨달은 즈카르야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4 조회수952 추천수8 반대(0) 신고


 

장애의 의미를 깨달은 즈카르야

 

- 윤경재 요셉

 

 

 

 

즈카르야는 하느님께 세 가지 은총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잠시 잘못된 생각을 하여 벙어리가 되는 체험과 아들 요한을 통해 자신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하신다는 약속이 실현되는 현장의 증인이 된 것 세 가지입니다.

 

즈카르야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해 10개월을 벙어리로 지내야 했습니다. 10개월은 한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입니다. 성숙의 시간입니다. 그는 졸지에 말 못하는 장애가 생기자 무척 답답하고 불편하여 자신과 주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말 한 마디 잘못하여 받는 벌치고는 좀 심한 편이 아니냐는 반항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생각하니 적잖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하느님께 매달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벙어리로 만드신 이유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즈카르야는 다른 유다인들처럼 장애를 하느님께 큰 죄를 지어 벌 받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겪었을 마음의 고통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장애를 죄의 결과로 본 이유는 남보다 더 나아야 행복할 것이라고 비교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 벌을 받아서 그리 된 것이니 어쩜 당연한 인과응보 아니겠냐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불편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장애인을 볼 때 그들도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하느님께 사랑 받아야 할 동등한 자격을 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벙어리로 살면서도 문득문득 하늘을 쳐다보면 여전히 높고 푸르고, 엘리사벳이 아이를 배어 행복해 하는 얼굴을 볼 땐 마치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해맑고 투명하게 빛이 났습니다. 벙어리가 된 남편과 마주칠 때 민망해 하는 엘리사벳의 행동이 도리어 어색할 정도였습니다. 들판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일하는 일꾼들의 땀 냄새로 가득 찼고, 누런 곡식은 머리를 숙였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자신이 벙어리가 되었든지 말든지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하느님의 뜻은 실현되고 만사는 그렇게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잘만 돌아가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는커녕 그런 게 옳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내게 원치 않는 시련이 닥쳤다고 세상이 잘못된다면 더욱 비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즈카르야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장애는 조금 불편함을 줄지언정 무엇인가 크게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장애가 징벌이 아니라 또 다른 은총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생각을 고쳐먹자 이제와는 전혀 다른 시야가 열리는 소박한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도리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에 찬미기도가 저절로 읊어졌습니다. 그동안 장애를 하느님께서 만드셨을 리가 없을 거라 추측했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장애가 고통스럽기는 해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소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그저 놀라울 지경이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 이름을 주님의 은혜라는 뜻인 요한이라 짓겠다는 엘리사벳의 대답을 듣고 즈카르야도 그 뜻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즈카르야보다는 요한이라는 새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자 그의 혀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구 외치고 싶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겪은 모든 은혜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즈카르야는 이제 모든 것을 선명히 알았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 허언이 아니고 드디어 성취된다는 것을.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어디에 있는지를.

 

즈카르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느님께 찬미를 올렸습니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그저 뱉어 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자기가 본 예언의 말을 제 혈육인 갓난아기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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