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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1224 -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복음 묵상 -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4 조회수74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 12 24 () 가해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복음 묵상

이사야서 9,1-6
티토서 2,11-14
루카복음 2,1-14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하느님께서는 당신 약속에 성실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와 함께하시길 약속하셨고, 마침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아들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성실한 약속에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는 밤입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복음은 그분이 태어나신 정황을 이야기합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호구조사령을 내렸고, 팔레스티나는 로마제국의 식민지였기에 주민들은 각자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 등록을 해야만 했습니다. 나자렛에 살던 요셉도 만삭의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베틀레헴까지 먼 길을 가서 호적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거기에 있는 동안 마리아는 아기를 출산하였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그 근방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떼를 지키던 천민인 목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천사의 알림을 듣고 아기를 영접하였습니다. 루가복음서가 전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의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분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초기 신앙인들이 작성하여 알리는 것입니다. 그들 신앙의 기원이신 예수님이 역사 안에 태어난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가 행복하다, 우는 이가 행복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그분이 세상에 태어나신 사실을 상상하면서 그분의 가르침과 삶에 어울리게 이야기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의 호구조사령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서민을 부모로, 말구유를 요람으로, 밤을 새워 양떼를 돌보며 사는 천민인 목자들의 영접을 받으면서,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천사들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를 위한 기쁨이었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혼인잔치 손님들은 단식하지 않는다.(마르 2,19)는 초기 교회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신랑과 같이 모든 이에게 기쁨을 준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지키고 바칠 것을 요구하신다고 믿던 유대교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참으로 자유롭게 살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가르쳤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성탄의 풍습입니다. 기쁨을 표현하는 음악과 화려한 장식들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인사말이 있고 선물도 있습니다. 2000년 전 한 생명의 탄생이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풍습들입니다.

동지(冬至)를 전후한 시기는 밤이 가장 긴 계절입니다. 우리는 이 계절의 어느 밤에 성탄을 기념합니다. 어둠 안에 빛을 밝혀 놓고 한 생명이 세상에 오신 사실을 기념합니다. 오늘 제1독서로 들은 이사야서는 말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빛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초기 신앙인들이 이사야서에서 가져온 말씀입니다. 백성은 재물과 권력을 최대의 보람과 힘으로 삼아 어둠 속을 걷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가진 것밖에 보지 못해서, 그것들을 갖지 못한 이들은 갖지 못한 것만 보아서 모두가 어둠 속을 걷습니다. 국민의 대표로 나라 살림을 한다는 사람들이 민생과 나라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 반목하고 한()풀이를 하며 어둠 속을 걷고 있습니다. 과거에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 살기 좋은 세상이나 온 듯이, 하느님도 정의도 다 잊어버리고 정치꾼이 되어 어둠 속을 걷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둠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념합니다. 그분은 강자로 군림하며 오시지 않았습니다. 연약한 어린 생명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병든 이를 고쳐주고 죄인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여,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물과 권력의 힘을 빌려 활동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재물이나 권력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도 않으시고, 심판하고 처벌하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하느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섬기는 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모르던 진실이었습니다.

그 진실은 인간을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자비와 사랑과 용서는 인류가 모르던 단어들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는 데에 반드시 나타나는 단어들입니다. 그 단어들과 무관한 사람들은 무자비합니다. 이웃을 미워하고 보복하면서 다투고 갈라지며 증오심의 노예가 되어 어둠 안에 삽니다. 자비와 사랑과 용서는 그런 어둠 안에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사는 사람이 실천하는 일입니다.

구약성서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셨다고 말하는 것도 무자비하고 미워하고 보복하는 땅을 벗어나서 서로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길 수 있는 땅으로 옮겨오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주었다는 율법도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게 하는 지침을 그 시대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안에 율사와 제관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군림하면서 율법은 하느님의 무자비와 미움과 보복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어둠 속을 걷는 백성’이 되었고 ‘암흑의 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빛으로 살아 계셔야 합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과연 예수님이 우리를 밝히시는 빛이신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 계명을 지키고 제물을 잘 바쳐서 현세에서 우리의 뜻을 이루고 내세에서도 잘 되겠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라면, 우리는 어둠 속을 걷는 백성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외로운 이들,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모두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보인다면, 우리는 암흑의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빛으로 살아 계셔야 합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비와 사랑과 용서의 새로운 진실이 우리의 삶 안에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 빛이 우리 실천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백성을 위한 기쁨을 노래하는 밤입니다. 남들이 기쁜 축일이라고 하니까 나도 기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멀고 먼 하늘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 안에 살아계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우리가 실천하여 어려운 이웃이 기쁨을 체험하는 곳에 하느님은 우리 안에 연약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소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우리가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땅에서도 확인됩니다.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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