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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빛은 어둠을 좋아한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5 조회수1,52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가해 성탄 대축일


<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


복음: 루카 2,1-14






동방 박사들의 방문


안젤리코(Fra Angelico) 작, (1432-1434),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헨델의 메시아는 부활절 때 꼭 부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입니다. 그러나 사실 헨델은 종교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속에서 오페라를 작곡하며 흥행을 노리는 그런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작곡하는 오페라는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오라토리오 음악인 메시아를 작곡하면서 역사에 길이남는 음악가가 된 것입니다.

헨델이 메시아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그가 메시아를 작곡하기 4년 전에 그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끼니 걱정을 하면서 간신히 몸을 회복시켰지만 계속 수입은 줄어들고 공연은 속속들이 취소되었습니다. 1741년 겨울 저녁 산책을 하다가 교회 첨탑 앞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찌하여 저에게 은혜를 주셨다가 또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하셨습니까? 주님,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책상 위에는 작은 소포가 하나 있었는데 오라토리오 가사가 적힌 종이들이 나왔습니다. 소포에는 시인 찰스 제넨스로부터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헨델은 가사뭉치를 훑어보며 투덜거렸습니다.

방자한 놈. 이류 시인인 주제에. 아니 뻔뻔스럽게도 제까짓 놈에게 하느님께서 영감을 주셨다고? 오페라 대본도 아닌 이 성가 쪼가리를 보내다니...’

그렇게 불쾌한 마음으로 가사를 뒤적이던 중 갑자기 이사야의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도 같은 이 내용이 자신의 처지와 같게 여겨지며 주님께서 낮추시는 것은 높이시기 위함이고 버리시는 이유는 다시 찾기 위함이며 죽이시는 이유는 다시 살리시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천국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으려는 것처럼 24일을 식음을 전폐하며 메시아를 쓴 것입니다. 1750년 런던 연주에서 국왕 조지 2세가 알렐루야 합창을 듣다가 감동한 나머지 일어서자 청중이 모두 일어서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까지도 알렐루야가 연주될 때는 모든 관객이 기립을 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어떤 분이 성당에 오시다가 넘어져 다치셨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기도해 주어 빨리 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일들은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아예 안 다치게 해 주셨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굳이 그렇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이유는 그런 고통만이 우리를 정화시켜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 없이는 우리 눈이 너무 흐려져서 주님을 온전히 바라 뵈올 수 없습니다.

김미경 강사도 일 년에 십억씩 버는 최고의 강사였다가 논문표절로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그렇게 좋아했지만 모든 강의들이 취소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살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강의를 어떻게 다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강의 안 하면 어때, 미경아! 괜찮아, 사랑해!”

새 해에 청년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내년엔 다 잘 될 거야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내년에 잘 안 되면 사랑한다는 말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일이 다 잘 되는 상태여야만 사랑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그것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이고 다 잘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누가 사랑한다고 해봐야 들릴 수가 없습니다. 강의를 할 수 없는 처지고 또 강의를 하고 싶어 죽겠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해봐야 들리지 않습니다. 그 말은 주님께서 귀에 대고 계속 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선을 하늘로 들어 높일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망해서 더 이상 땅에서 희망할 수 없을 때 별과 대화하기 위해 눈을 하늘로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 때 그렇게 머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동방박사 세 명과 몇 명의 목동들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 세상의 빛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감동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로 들어갔을 때 이집트에 머물던 사람들은 모두 파라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으로 만족해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괴롭혀 이집트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미움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온 모세와 아론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꿈쩍하지 않고 모세는 온갖 재앙을 펼쳐보였습니다. 주님의 다가오심이 우리에게는 재앙입니다. 마치 빛이 다가오면 어둠에게는 재앙인 것과 같습니다. 그 재앙을 통해 우리가 빛이 없으면 어둠뿐이라는 비참함을 깨닫게 된다면 이제 세상 것을 희망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 것을 희망하는 것이 곧 고통의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제 빛이 보이게 됩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어둠은 빛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빛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이 마른 것인데 음식만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은 바로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전부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우리 안에서 여겨지시기를 원하십니다.

 

빛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하늘의 별을 볼 수 없듯이 우리가 세상에서 바라는 것이 많으면 주님은 덜 바라게 됩니다. 바라는 것 같겠지만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도와줄 도구로 바라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이루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필요 없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어둠 자체에게는 빛이 전부이고 마구간에겐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광야로, 어둠속으로, 가난함으로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좋아하고, 예수님은 마구간을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전부가 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탄도 예수님만이 유일한 희망인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은 참 기쁨으로 태어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께 고통과 멸시만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이 기쁨이고 영광이 된다면 예수님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기 때문이고 그렇게 예수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룻기에서 룻은 남편도 잃고 땅도 잃고 사는 가장 불쌍한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땅이 있는 보아즈가 유일한 희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에게만 희망을 걸고 있는 이 불쌍한 여인과 혼인할 수밖에 없었던 보아즈. 그렇게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남편이 죽고 동생까지도 자기 때문에 죽게 되어 시아버지인 유다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타마르는 창녀 행세를 하며 시아버지에게서 씨를 받아냅니다. 주님은 그렇게 당신 아니면 아무 것도 세상에서 희망할 것이 없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작년 성탄 때 세월호 컨테이너 박스에서 했던 성탄 미사가 지금까지 들여 본 성탄미사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음악도 없었고 캐롤도 없었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어둠인 사람들 틈에서 가장 사제다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어둠의 빛이시고 광야의 만나와 바위에서 나오는 물이신 분을 밝은 곳에서, 혹은 이미 먹고 마실 것이 있는 것 안에서는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만이 우리 전부입니까? 그러면 그분의 탄생이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입니다. 생명에 목말라 있습니까? 그러면 생명나무인 성탄 트리만 봐도 감동의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좋아합니다. 내 안에 그분 외의 희망을 품지 않도록 합시다. 그렇게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마구간의 식구들이 되시고 그 감격을 느끼는 성탄 되시기를 빕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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