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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1228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복음 묵상 - 이인옥 세실리아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8 조회수96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6 12 28 () 가해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복음 묵상

요한 11,5-2,2
마태오복음
2,13-18


이인옥 세실리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다른 아기들의 목숨은 버려두고 자기 아들만 구한 것을 두고 평생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예수의 제 2복음'이라는 소설의 밑바탕에는 하느님은 왜 무고한 어린 아기들의 생명을 구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지, 과연 그런 하느님이 정의로운 분인지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신자라고 해서 한 번쯤 이런 회의를 품어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맡은 예비신자들도 성서필사를 하면서 궁금하다며 질문도 하였다
.

먼저 우리는 성서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성서 저자는 예수에 관한 사건기적, 업적을 시시콜콜 전해주는데 관심이 없다. 특히 유년 사화는 예수에 대한 복음사가의 신학적 설명이라고  수 있다. 즉 복음사가가 예수를 어떻게 신앙하는지,  신앙고백을 몇 개의 그럴 듯한 이야기 안에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예수의 어린 시절이 역사보도(예수의 전기)라고 생각한다면루카와 마태오가 전해주는 유년기 이야기의 모순점과 차이점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예수의 족보를 비교해보라그러므로 유년사화는 두 복음사가 나름으로 예수님을 어떻게 파악, 신앙하고 있는지를 이야기 형식에 담아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형식은 유다 민족들이 즐겨 쓰는 표현방식이다
)

마태오 복음에서의 예수의 유년기는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예수 탄생예고’, ’동방 박사들의 예방’, ’에집트 피난’, ’아기들의 집단 학살’, ’에집트에서 돌아옴이다. 마태오 복음은 유대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예수는 누구신가"를 말하고 있는 복음이다. 유대인 독자라면 이 제목들과 내용들만 보아도 모세가 연상될 것이다민족의 영웅, 모세의 일생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

당대 최고 통치자, 파라오의 명령으로 히브리 사내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모세. 당대 유다의 통치자, 헤로데왕이 베들레헴의 사내아이들을 학살하는 위기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구출된 예수. 미디안 사막에서 더부살이하던 모세는 잔혹한 왕이 죽자 하느님의 명을 받아 자기 백성을 구출하러 돌아온다. 예수 역시 잔학한 왕이 죽었다는 소식과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는 천사의 예고를 이미 받은 바 있다
(1,21).

, 이제 마태오 복음사가가 그분을 어떻게 신앙하고 증거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모세와 예수는 강력한 인간()의 잔혹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구출되어, 하느님의 보호 속에 자라서 백성을 구원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예수는 결코 모세와 견줄 대상이 아니지만유다인들이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모세를 끌어다 말함으로써 보다 쉽게 그분을 이해하게 한다. 또 예수에 관한 모든 일이 하느님 약속의 성취임을 심어주려 한다이런 까닭에 복음서 곳곳에는 모세와 연관된 구성이 눈에 띈다
.

다섯 개의 긴 설교로 구성되어 있는 복음서 전체도 그렇지만 다섯 개의 유년기의 에피소드는 더욱 모세 오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주님께열 개의 말씀’(십계명)을 받았지만, 예수는 산에서 스스로 복된 말씀(진복팔단)을 반포하시는 주님이시다
.

이제 이런 시각으로 오늘 복음을 다시 본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가장 어두운 시기인 바빌론 유배 당시, 학살당한 자식들의 어머니들의 참혹한 울부짖음이 회상된다. 유배는 제2의 종살이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거역하고 지은죄의 응벌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니까 복음사가는 바빌론 유배의 역사를 회상시키며 예수께서는 이러한 죄의 응벌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되살려 내실위대한 분이시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의 끝을 모두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맺음으로써 성서에서 약속하신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처럼 유년사화는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를 보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어떤 분으로 신앙해야 하는지 알려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

그러기에 하느님은 베들레헴의 무고한 아이들을 다 놓아두시고 왜 아기 예수만을 구했는가에 대해 골몰할 필요도 없고, 한 명의 구세주 때문에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양이 될 수 있는가 의아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무고한 어린이들의 희생을 애도하고 기념하는 날을 정했을까
?

오늘 성서말씀을 통해서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또는 무관심 속에서 무고하게 학대 받고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무력한 어린이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낙태되고 있는 죄 없는 아기들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내몰린 아이들자본주의의 횡포 속에 굶어 죽는 아이들사회의 잘못된 제도로 희생되고 도태되는 가난한 아이들, 그 책임은 하느님이 아니고 고스란히 우리 사람에게 있다
.

오늘 복음의 메시지는 이제 우리가 무죄한 아기를 죽이는 또 다른 헤로데가 되거나, 어떠한 난관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또 다른 요셉이 되거나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말씀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나는 무죄한 어린 생명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행동하라는 말씀이다
.


이인옥 세실리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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