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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기들이 예수님 탄생을 알렸다면 우리는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8 조회수961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로데가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 다행히 예수님은 하느님의 천사가 미리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이집트로 피난가라고 일러 주었기에 천만 다행으로 이 억울한 죽음에서 피할 수 있었다. 이때 억울하게 죽은 아기들의 희생을 교회는 오래전부터 순교로 기억하다가 중세 이후에는 성대한 축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죄 없는 아기들이 무참히 희생되었기에. 오늘은 죄 없이 죽은 아기 순교자들 축일이다.

 

아기 예수님의 이집트 피난에 얽힌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요셉 성인과 핏덩이 아기를 안은 세 가족이 이집트로 가는 중 날이 저물었다. 쉴 곳을 찾았으나 인가는 없고 되레 마구간보다 못한 동굴 하나만 덜렁 있을 뿐이었다. 날씨는 추워서 곳곳에 하얀 서리가 내려 있었다. 그때 거미 한 마리가 가련한 아기 예수를 보았다. 거미는 이 추운 밤에 그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여러모로 생각했다.

 

고민 끝에 거미는 동굴 입구를 거미줄로 얽어서 그대로 망을 만들어 추위를 막고자 하였다. 한참 후 헤로데의 군대가 어린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뒤 쫓아왔다. 그들은 동굴 근처에서 혹시 굴 안에 사람이 숨어 있지 않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들 중 한 우두머리가 온통 하얗게 서리가 내린 거미줄에 막힌 입구를 발견하였다.

 

그는 말했다. ", 이 거미줄을 봐, 돌아가자. 누가 이 속에 들어갔다면 거미줄이 쳐있을 까닭이! 오래된 거미줄인 것을 보니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하네." 병사들은 그러고는 그냥 그 동굴을 지나쳐 갔다. 우리가 크리스마스트리에 금 사슬이나 예쁘게 치장한 은사슬을 두르는 것은 이 전설에서 유래된 풍습이라고들 한다나.

 

아무튼 헤로데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정적들을 살해한 잔인한 임금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 무렵에 자신의 왕권에 위협을 느껴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힘없는 아기 하나에 수많은 군인을 가진 그의 두려움은 아이러니를 넘어 불쌍한 말로를 드러내었다.

 

이렇게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 사는 아기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이 장차 유다의 왕이 되시리라는 예언 때문에. 자신의 왕위를 유지하려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다. 아기 예수님 때문에 무죄한 아기들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어떻게 본다면 살해당한 아기들은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메시아요, 구세주이심을 피로써 증언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축일을 지내면서 의문점 하나를 가질 게다. 하느님께서는 왜 죄 없는 아기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시고 그냥 두셨을까? 과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아기들이 죽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헤로데 때문이다. 그의 욕심과 그것이 낳은 두려움 때문에, 또 그 두려움이 낳은 폭력 때문에 죽은 것이다. 지금도 욕심으로 인한 두려움이, 또 그것이 부르는 폭력으로 수많은 고통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고 자기에게 방해가 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제거하는 자들을 많이 본다. 자기 욕망을 달성하려고 힘없고 죄 없는 어린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예를 들어 전쟁터에서 무죄한 어린이들이 얼마나 죽어 가고 있는지? 산업 현장에서도 많은 어린이가 착취를 당한다. 심지어 낙태로 어린 생명이 쉽게 희생되기도. 마치 박해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특히 어린 생명과 힘없고 자기 자신을 보호할 힘조차 없는 이들의 권리에 대해서.

 

이처럼 죄 없고 천진 나만한 아기도 엄청난 권력을 쥐고 그기에 집착하는 헤로데를 떨게 하였다. 그래서 죄 없는 아기들을 죄 많은 어른들이 수없이 죽였다. 말 못하는 아기들이 바친 생명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그리하여 연약한 그 아기들은 확실한 증거자가 되었다. 말 못하는 어린 아기들의 그 죽음이 이렇게 믿음의 증거를 고백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을 증언해야 할까?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을 기리는 오늘, 믿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반성의 질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헤로데,아기 순교자,베들레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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