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8 조회수1,473 추천수12 반대(0)

성탄미사를 동창 신부님이 있는 성당에서 함께 했습니다. 매일 교구청에서 미사를 드릴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성당을 장식한 트리, 구유, 눈망울이 예쁜 복사 아이들, 성당을 가득 메우신 교우분들을 보았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강론 중에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성탄은 역사적인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드러내는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빛이신, 새로운 태양이신, 우리의 구세주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제가 태어난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사랑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것이고, 제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성탄은, 사랑이 없는 성탄은 희망이 없는 성탄은 어둠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성탄은 강생의 신비입니다. 강생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태어나신 방식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셨던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누리셨던 하느님 나라의 권위와 능력을 밝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고난을 받으셨는지, 그분의 말씀, 표징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온전한 삶이 있었기에 우리는 매년 그분의 탄생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그분의 강생이 하느님께로부터 오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죄 없는 어린아기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두 살 이하의 어린이를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어린아이가 메시아가 되어 자신의 권력과 왕위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두려움이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만 무죄한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낙태를 통해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죽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1억 명 이상 됩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분이 고통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고통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이가 뜨거운 것을 못 느낀다면, 아이가 추위를 못 느낀다면, 아이가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에 신체의 장애를 얻을 것입니다. 고통은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몸을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통은 소중함을 알게 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자녀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는 출산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쓴 작품들이 무척 소중할 것입니다. 그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갈등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장만한 집이 소중한 것은 그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어진 집은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소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통은 공동체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소방공무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른 새벽 환경미화원이 거리를 쓰는 것은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저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도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른 것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삶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탄의 기쁨은 인생이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의 기쁨은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인생의 전부도 아닙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축복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참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철저한 섬김이요, 나눔이었습니다. 권력을 지녔지만 사용하지 않았고, 섬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할 길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주님!

세상을 떠난 무고한 사람, 억울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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