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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27."라헬이 자식을 잃고 운다"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8 조회수1,206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태 2,13-18(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지금 우리는 기쁨의 축제인, 성탄 8부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8부 축제를 시작하면서 구세주의 탄생에 이어, 곧 바로 고통을 기념하면서 축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죽음을,오늘은 죄 없이 죽은 아기들의 죽음을, 기쁨의 축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기쁨과 고통을 함께 축제로 지내는 이 일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사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지상탄생의 기쁨과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과 꼭 닮은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천상탄생의 기쁨을, 그리고 예수님보다 먼저 순교한, 훗날 예수님께서 꼭 닮게 될 무죄한 어린이의 죽음과 천상탄생의 기쁨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죄한 아기들의 예수님 때문에 죽게 된 이 사실은 참으로 알아듣기 힘든 일이지만, 비록 그들이 자신의 의지로 신앙을 고백하지도 못했지만, 분명 그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보다 먼저 목숨을 바친 첫 순교자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순교는 이중의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무죄한 아기들의 순교요, 동시에 그 어머니들의 순교인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당한 첫 번째 순교를 만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또 다시 십자가의 아들의 순교와 함께 두 번째 순교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아기를 잃은 어머니들의 아픔마저 끌어안으셨던, 아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순교도 함께 봅니다.

 

사실,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아기들의 “울음소리”보다 어머니들의 “애끊는 통곡소리”가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헤로데의 죄 없는 아기 학살을 두고,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마에서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

 

 

 

아기들의 고통은 그들에게는 한 순간이고 죽음은 고통의 끝이었겠지만, 아기를 잃은 어머니들에게는 그 고통과 슬픔이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기 때문에 다른 죄 없는 아기들이 살육당하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은 더더욱 찢어지고 아팠을 것입니다. 살인자 아닌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의 심정은 죄 없이 죽은 모든 아기 어머니들의 아픔을 통째로 짊어지셔야만 했을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자신의 아기를 희생시켜 다른 많은 아기들을 살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토록,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이토록,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에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했던 마리아는 때가 되면, 또 다시 아무런 죄도 없는 당신의 아들의 죽음을 떠맡아 고통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이토록, 죄 없으면서도 타인의 허물을 뒤집어써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인가 봅니다. 진정한 순교일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도 훗날, 그렇게 타인의 허물을 뒤집어쓰고 사랑으로 가실 것입니다. 진정한 순교를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하잖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들이 싸우기도 전에 승리하도록 하시고, 곧바로 거룩한 삶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죽은 죄 없는 아기들을 맨 먼저 그리스도를 증언한 첫 순교자들로 삼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죄 없이 죽은 아기들과 함께 그들의 어머니들과 아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동참시키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슬픔을 넘어서, 하느님의 구속신비를 드러내는 기쁨의 축일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러는 부당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혹 무죄하면서도 억울함을 당할 때가 있다면, 바로 그 일을 순교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곧 그 일을 ‘죄 없이 죽은 분’, 곧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을 드러내는 순교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오늘도 매 2-3초 사이에 무죄한 아이의 순교가 태중에서나 태어나서나 벌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오늘도 그렇게, 아기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욕심과 무책임과 편리로 순교당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여전히 무죄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그렇게 여전히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무죄한 이들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지고한 사랑은 무력하고 허약한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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