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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 구유의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도전하도록 합시다[2016년 12월 24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30 조회수1,099 추천수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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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6 1224일 토요일[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62,1-5

화답송 : 시편 89(88),4-5.16-17.27 29(◎ 2)

2독서 : 사도행전 13,16-17.22-25

복음 : 마태오 복음 1,1-25<또는 1,18-25>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missaid=7760&gomonth=2016-12-16&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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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 구유의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도전하도록 합시다

http://www.news.va/en/news/pope-let-us-allow-ourselves-to-be-challenged-by-th

 

2016-12-24 바티칸 라디오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유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도전하시도록 하고 그리고 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오늘날 세상의 어린이들의 도전도 우리 스스로 받도록 하자고 권고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크리스마스 전야에 성베드로대성당에서 봉헌된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애정 어린 아기 침대에 누워 있지 못하는 어린이들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폭격을 피해 지하에 숨어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서 이민자들을 너무 많이 태운 배 위에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태어남을 허락 받지 못한 어린 아이들, 그 누구도 배고픔을 달래주지 못해 우는 어린이들, 장난감이 아닌 무기를 손에 든 어린이들로부터 우리가 도전 받도록 합시다.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의 전문에 대한 공식 번역문이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에게 보낸 서간 2,11). 사도 바오로가 이 거룩한 밤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의 선물은 거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아기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됩니다.

 

영광의 밤입니다. 그 영광은 베들레헴에서 천사들이 선포했고 오늘 온 세상 모두가 선포하는 영광입니다. 기쁨의 밤입니다. 왜냐하면 이 날로부터 모든 시대에 그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그분께서는 멀리 계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늘이나 신령스러운 개념 안에서 그분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즉 그분은 가까이 계십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셨고 결코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이 손수 만드신 우리의 인성과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빛의 밤입니다. 그 빛은 이사야에 의해 예언되어졌는데(이사야서 9,1 참조) 어둠 속을 걷는 사람들에게 비치는 그 빛은 다가와 베들레헴의 목자들을 비추었습니다.(루카 복음 2, 9 참조)

 

목동들은 단지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이사야서 9,5) 이 모든 영광, 이 모든 기쁨, 이 모든 빛이 유일한 한가지, 천사가 목동들에게 가르키는 그 표징으로 모아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복음 2,12) 이것이 예수님을 알아 보는 영원한 표징입니다. 그 당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도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크리스마스를 경축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표징을 묵상해야 합니다. 갓 태어난 작은 아기의 여린 천진난만함, 그분이 누워 계신 곳의 온화함, 포대기의 따스한 정. 하느님께서 거기에 계십니다.  

                                                                           

복음은 이 표징으로 역설적인 상황(paradox)을 드러냅니다. 복음은 황제와 통치자와 그 시대의 권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그곳에 있게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왕궁의 그랜드 홀에 나타나지 않으시고 마구간의 가난함 속에 나타나십니다. 화려함과 허식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박함 안에 계십니다. 권력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놀라우리만큼 보잘것없는 것 안에 계십니다. 그분을 찾으려면 우리는 그분이 계시는 곳, 그곳에 가야 합니다. 우리는 몸을 굽혀야 하고 우리 자신을 낮춰야 하고 우리자신을 작게 만들어야 합니다. 태어난 아기는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분께서는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환상을 뒤로하고 본질로 나아가가라고, 우리의 채울 수 없는 요구를 버리라고, 우리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불만족스러움과 슬픔을 버리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은 우리를 도우시어 어린 하느님의 소박함 안에서 평화와 기쁨과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 이것들을 뒤에 두고 나서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구유 안에 누워 있는 아기가 우리에게 도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또한 오늘날 세상의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아기 침대 위에 누워 있지 못하는 아이들, 오히려 그 존엄성을 게걸스럽게 갉아 먹는 불결한 구유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스스로 도전 받도록 합시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 지하로 숨는 아이들, 대도시의 거리에 있는 아이들, 이민자들을 너무 많이 실은 배 위에 있는 아이들, 탄생을 허락 받지 못한 아이들, 아무도 그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지 않아 우는 아이들, 장난감 대신 무기를 손에 든 아이들로부터 우리 스스로 도전 받도록 합시다.

 

크리스마스의 신비는 빛과 기쁨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물으며 우리를 뒤흔듭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크리스마스의 신비는 슬픔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삶이 버려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크리스마스는 그 자체가 슬픔의 맛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일어났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예수님을 구유 안에 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루카 복음 2, 9). 예수님께서 어떤 이들에 의해 거부되면서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이 대하는 무관심 속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이 아닌 우리들이 주인공이 되는 잔치가 되어버린 오늘날에도 또한 똑같은 무관심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상업적인 빛들이 하느님의 빛을 어둠으로 쫓아 버릴 때, 우리가 선물에만 관심을 갖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차갑게 대할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본질적으로 희망의 풍미를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더 어두운 측면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빛은 빛납니다. 그분의 온유하신 빛은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즉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와 같이 가난하고 연약하게 태어나셔서 그분의 다정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께 가까이 이끄십니다. 그분께서는 빵의 집을 의미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십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빵으로 태어나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삶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주시려고 우리의 세상에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려고 또는 명령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주고 섬기러 오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쪼개어지는 빵이 되시는 구유와 십자가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의 직접적인 끈이며 그것은 우리 삶에 빛을 가져 오고 우리 마음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목자들이 그날 밤에 이 끈을 붙잡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 앞에서는 아무도 소외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에 초대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목자들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느끼며 자족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소유한 것들에 둘러싸여 집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동들은 서둘러 갔습니다”(루카 복음 2,16 참조). 오늘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시도록 부르시고 모으시도록 합시다. 우리가 소외 당한다고 느끼는 우리 안의 영역, 우리 자신의 한계에서   나와 믿음을 갖고 그분께 갑시다. 구원하시는 다정하신 사랑을 만집시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갑시다. 멈추어 서서 구유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탄생을 상상합시다. , 평화, 극도의 가난 그리고 거부.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소외와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을 예수님께 가지고 가서 목동들과 함께 실제 예수님의 성탄으로 들어갑시다. 그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맛보며 즐길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움입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우리가 구유 앞에 멈추어 서고 내 생명의 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 앞에 멈추어 섭니다.

 

그분의 겸손하시고 끝이 없으신 사랑을 묵상하며 그분께 기도 드립시다. 당신께서 나를 위해 이 모든 일을 이루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티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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