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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림 속에서 종소리가 들려요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30 조회수1,120 추천수6 반대(0) 신고

 

그림 속에서 종소리가 들려요

 

- 윤경재 요셉

 

 

 

성 가정 축일인 오늘 문득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프랑스 농촌화가로 이름난 장 프랑스와 밀레가 그린 만종입니다. 우리나라 6~70년대에 복제한 프린트 밀레의 만종이 집집마다 걸려있기도 했고 교과서에도 나와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그림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살던 집 마루에도 복제화가 한 장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색감이 어두워 그림 아래쪽 어두운 부분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야 제대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녁노을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화면 중앙에 젊은 부부가 두 손을 모은 채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멀리 지평선 근방에 첨탑이 솟은 성당이 뿌옇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면 가득 성당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림 속에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걸 만종을 대하고 처음으로 깨달았지요. 서양화가 박수근도 12살에 밀레의 만종을 처음 만나 그 종소리를 듣고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얼마 되지 않는 감자를 손수레와 바구니에 수확하고서도 감사기도를 올리는 장면은 젊은 부부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큰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농기구라고는 남편 옆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쇠스랑이 전부입니다. 화면 아래 정 가운데 자리한 바구니에는 가족이 먹을 감자 몇 알이 담겼을 뿐입니다. 가난이 물씬 풍겨 나옵니다. 이 그림을 보고서 사람 사는 게 동서양이 다 비슷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서양은 자연과는 동떨어진 인공의 세상일거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죠. 전원배경의 순진한 농민의 일상적 모습이 이질감을 없애고 친근감을 주었습니다.

 

만종 속에는 노동과 감사와 사랑이 담겼습니다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경건함이 물씬 풍겨 나옵니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멀리 성당 종소리에 맞춰 저녁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제게 알 수 없는 경외감을 주었습니다. 어려서 마루에 걸려있던 이 그림을 보고 두 번째로 놀란 것이 바로 경건한 신앙심입니다. 책에서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그때는 우리 집안이 종교가 없었을 때라 으아 했습니다. 저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경건한 기도를 올릴 수 있다는 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밀레는 만종을 그린 계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할머니는 들에서 일을 하다가도 성당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가엾게 죽은 이들을 위해 삼종 기도를 드렸다. 그것을 생각하며 그렸다.” 타인을 위한 기도를 먼저 떠올렸다는 게 어려서는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저도 노년에 이르러 그래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지냅니다.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밀레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의 정신적 지원으로 어렵사리 그림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남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파리라는 대도시에서는 실패만 거듭했지만, 바르비종이란 시골 마을로 귀향한 뒤 그림과 노동을 겸비하고 농민들의 애환을 소재로 삼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만종과 같은 걸작을 유산으로 남겨주었습니다.

 

종교가 없으셨던 제 부모님께서 이 그림을 벽에 거셨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가난한 가운데 사랑이 넘치고 매사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일하는 즐거움을 잊지 말자는 것 또한 중요한 가르침이죠. 넉넉하지 못한 아버님 수입 탓에 어머님도 일거리를 얻어다가 집안에서 짬짜미 봉제인형을 만들고, 옷에 스팡크 수를 놓으셨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일하시다가 가끔씩 얼굴을 들어 만종 그림에 눈을 맞추실 때 곁에 있던 저도 저절로 눈이 쫓아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성가정은 보잘것없는 목수로 생계를 이어갔던 요셉과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규모 있게 사셨을 마리아, 그리고 어린 예수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랑과 감사와 기도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지낸 곳입니다. 굉장한 기적이 넘쳐흐르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함 속에서 꾸준함이 묻어나는 사랑의 장소였습니다.

 

성가정은 일상이 곧 진리라는 가르침이 울려 나오는 곳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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