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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 써보는 로고스 찬가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31 조회수1,275 추천수5 반대(0) 신고


 

새로 써보는 로고스 찬가

 

- 윤경재 요셉

 

 

 

로고스 찬가는 요한복음서 머리말로서 전 복음서의 정신을 요약합니다. 마치 오페라나 악극의 서곡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각 악장의 주제들을 미리 들려주어 청중을 자연스럽게 음악 속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서곡만 들어도 전체 내용이 상기됩니다.

 

로고스 찬가의 주어는 그분입니다. 그분은 예수를 지칭합니다. 예수는 이천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실존했던 한 인물에게서 받은 강렬한 인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 그를 믿는 단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대로 그리스도이었던 예수를 믿는 종교가 탄생되었습니다.

 

지구상에 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한 실존 인물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은 고등종교는 없습니다. 가끔 그렇게 주장하는 종교가 나왔지만, 모두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여타 종교는 우주의 신비와 깨달음,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가리켜 보이는 지도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했어도 나를 믿으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체적 인물인 예수는 달랐습니다.

 

구체적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는 추상적 원리, 비인격적 이념, 규범, 체제 등을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전 생애를 통해 이런 주장을 내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오로지 자신의 언행을 통하여 생명운동, 생생한 인식, 구체적 실존의 풍요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구체적 인물인 예수는 사색과 토론, 모범적 언행을 통해 주위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상상과 자발성, 창의성, 개혁을 촉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 모든 변화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말했으며 성령은 언제나 살아있으며 자유이고 진리라고 보여주었습니다.

 

예수와 달리 사람들을 심오한 진리로 이끌려면 늘 탁상공론 같은 주의주장이 앞설 뿐입니다. 그들이 주장 하는 진리 안에는 핏기를 잃은 모습이 곳곳에 숨어들게 됩니다. 자기모순의 단계에 이르면 그들은 교묘하게 꼬리를 감춥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지금도 사람들을 감동시켜 이끕니다. 그것을 예수는 성령의 힘이라고 보여주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이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근본은 예수라는 구체적 인물에서 출발합니다. 또 역사 속에서 교회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성령의 목소리가 울려 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덕분에 교회는 그 어떤 것보다 생동하며 복원력을 잃지 않고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로고스 찬가가 바로 이 진리를 하나로 담았습니다. 그분과 같이 숨 쉬고 생활하면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은 공동체가 그분의 사후에 그분을 찬양하며 부른 찬가입니다. 공동체가 깨달은 것은 예수야말로 생명을 주시는 분, 빛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 하나하나를 재인식하기 시작했고 전부가 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못 충격적인 멘트가 맨 앞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의 서막을 여는 로고스 찬가는 이중 나선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찬가와 세례자 요한의 말이 섞여 있고, 찬가 부분도 기승전결 순서가 아니라 결론부분이 앞과 중간에 나오는 나선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 특유의 어법 구조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중간에 삽입된 세례자 요한의 말은 모두 빼어 뒤에 놓고 찬가 부분도 기승전결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인간은 아무도 하느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아드님께서 하느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과 처음부터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말씀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생명이신 빛으로 어둠을 비추셨으나 어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분이 생명과 빛임을 깨닫고, 그분을 받아들이며 믿는 이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습니다.”

 

여기에 세례자 요한에 관한 내용과 말을 이어 붙여 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원인과 결과를 순서대로 풀어내려는 현대인의 단선적 사고방식과 히브리인의 사고방식이 적잖이 차이가 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처럼 한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쓰려고 요한 저자는 강조 부분을 1절과 2, 14절에 반복하여 이중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보충하는 내용이 연이어 나오게 배치하였습니다.

 

1.‘생명과 빛을 한 뿌리로 어둠을 반대편으로 하여 대립적 차이를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대립 구조는 2.‘받아들임맞아들이지 않음’, 3.‘하느님의 자녀혈통, 육욕, 남자의 욕망에서, 4.‘은총, 진리율법등 모두 네 번에 걸쳐 대조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서론이라 할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라는 구절을 맨 마지막에 배치하여 외아드님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슬며시 강조했습니다.

 

로고스 찬가는 요한 저자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을 숙고하며 쓴 서곡입니다. 연륜과 신앙심이 지극한 한 명상가가 전 인류사를 조망하며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매개로 하여 연결 지은 것입니다.

 

오죽하면 불교에서 도력이 높은 스님들도 진리를 담은 요한 복음서를 한번은 읽어보아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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