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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유의 어머니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31 조회수1,41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복음: 루카 2,16-21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


 벨리니(Bellni, Giovanni) 작, (1475),  피렌체 콘티니 보나코씨 콜렉션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구약의 예수님이라고 하면 단연 파라오로부터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모세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의 탄생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헤로데의 질투로 죽임을 당할 뻔 했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때는 헤로데의 눈을 피해 달아난 곳이 이집트였지만 모세는 이집트 안에서의 어떤 누군가의 도움만이 절실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중 어떤 누구도 어디 다른 곳으로 달아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집트 공주가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멸망과도 같은 피해를 줄 누군가가 태어났는데 이집트의 공주가 그를 구해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남자 아기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 명령을 지키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을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집트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있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도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명령에 역행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세상과 싸워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 또한 이집트 공주처럼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힘에 짓눌려 세상을 이기시고 그 종살이에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누가 원수의 자식을 낳아줄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성모님만이 이미 그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신 유일한 분이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줄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누가 원수인지 명확히 아시고 계셨습니다.

 

위플래쉬란 위대한 드러머의 꿈꾸는 한 청년과 또 한 명의 미치광이 지휘자에 관한 내용의 영화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라고 말하며 손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데도 다그치기만 하는 폭군 선생이 천재 드러머를 탄생시키는 내용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선생은 그냥 폭군입니다. 그 선생보다 더 미친 학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선생 또한 그 학생의 공연을 지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선생은 본래 자기만 아는 사람이고 마치 파라오처럼 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학생은 유명한 드러머가 꼭 되어야한다는 꿈을 안고 미국의 유명한 음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플렛처란 유명한 지휘자의 눈에 들게 됩니다. 그런데 플렛처가 지휘하는 밴드는 그야말로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드러머도 세 명씩이나 되어 미친 듯이 노력하지 않으면 악보나 넘겨주어야하는 보조로 바로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주인공 앤드류는 여자 친구까지 버려야 하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미쳐야만 잔류가 가능한 그 밴드를 위해 사랑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고가 생겨 공연에 늦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앤드류를 이해하지 않고 그를 잘라버립니다. 애인과 심지어는 가족, 친구들까지 포기하고 그 선생의 말만 따라 손이 터져라 드럼을 두드렸는데 결과는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동안의 노예생활 고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망해버린 앤드류는 그 선생의 폭력적 가르침에 의해 자살을 한 한 학생의 조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그 선생의 모든 강압을 토로합니다. 그렇게 플렛처는 학교에서 잘리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 앤드류가 우연히 들린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던 플렛처를 만나게 되고 플렛처는 한계 이상으로 학생들을 끌어올리려던 것뿐이라며 미안하다고 앤드류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앤드류가 다 외우는 위플래쉬란 곡으로 자신이 이끄는 밴드로 경연에 참가해보자고 제의합니다. 앤드류는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어 기뻤지만 공연 시작 바로 전에 표정이 바뀐 플렛처는 네가 나한테 한 거 다 알고 있어라고 하며 연주곡을 위플래쉬가 아닌 앤드류가 모르는 곡으로 시작합니다. 미래 연주자를 찾으려 몰려든 전문가들 앞에서 그의 연주가 형편없게 만들어 그가 영원히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앤드류는 아직도 자신이 플렛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에 한탄하며 무대를 내려옵니다. 그러나 다시 올라가 혼자 미친 듯이 드럼을 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위플레쉬. 어차피 망쳐버린 인생 더 잃을 것도 없습니다. 이에 함께 있던 단원들도 그의 드럼에 맞춰 위플래쉬를 연주합니다. 관객이 지켜보고 모든 밴드 단원이 엄청난 몰입도로 연주하는 위플래쉬를 끊었다가는 자신의 커리어가 위험해지는 상황. 플렛처는 결국 드럼에 맞춰 지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도 들어볼 수 없었던 위대한 연주가 완성된다는 내용입니다.

 

앤드류는 플렛처라는 선생에게 먼저 인정을 받고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생은 아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완전한 밴드를 만들어 명성을 유지하는 것뿐, 그들에 대한 참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라고 하며 다그칩니다. 그의 노예가 되어있는 많은 이들 중에 나중에 완전히 미쳐버린 앤드류만이 대들 수 있었습니다.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플렛처를 따르는 게 아니라 플렛처가 자신을 따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을 통해서 진정한 한계를 뛰어넘는 음악을 사람들이 듣게 된 것입니다. 그의 체제 안에서는 그저 세상에서 잘 한다는 정도였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무아지경의 음악이 솟구치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아의 압제로부터 고생하며 죄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오직 성모님만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셨습니다. 돌에 맞아죽던 간음한 여자라 불리던 아무 상관 안 하는 분이셨습니다. 가장 약해보였지만 가장 강한 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그분의 발밑에 잠잠히 밟혀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처지가 못 됩니다. 왜냐하면 뱀이란 세상 교만이나 명예, 쾌락이나 편안함, 돈이나 영화 등을 원하는 이들을 유혹하여 노예로 삼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전혀 바라지 않는 성모님과 같은 분에게는 그저 지렁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이유는 이처럼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바로 세상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무언가 잃을 것이 있으면 그것에 얽매여 하느님의 아드님을 받아들을 자유를 잃게 됩니다.

저와 함께 일하고 계신 관리장님이 하느님을 체험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15년 전 기적과 같은 일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 분은 농사를 짓고 계셨고 논에 불을 질러 태우신 다음 다 꺼진 것을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뒤를 돌아보더니 산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분명 자신의 밭에서 옮아 붙은 것이 확실했습니다. 관리장님은 위로 뛰어올라가서 옷에 불이 옮아 붙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불을 껐고 아내는 소방서에 전화하러 뛰어 내려갔습니다. 불은 바람을 타고 나무에서 나무로 옮아 붙었기 때문에 그 훨훨 타고 있는 화마와 혼자의 힘으로 싸우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다 포기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람이 산 밑으로 불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눈을 들어 동네 사람들이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들이 이상하게 불이 다 꺼졌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바람은 정말 위에서 아래로 불고 있었고 그렇게 훨훨 타던 불이 순식간에 꺼져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듯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께 맡겨야만 하는 처지까지 사람을 끌어내리십니다. 그래야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잃을 것이 너무 많아서 주님께 온전히 매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노예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가 없다면 예수님을 세상에서 구해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세상의 원수를 드러나게 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불이 나서 온 산이 아주 멀리까지 다 타버린 때가 있었는데 그때 며칠 동안 자신의 돈으로 밥을 사 먹으면서까지 불을 끄러 다녔다고 합니다. 그때의 고마운 생각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니었다면 그때 타 버렸을 그 산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을 좋아하게 만드는 자아에 사로잡혀 종살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성모님처럼 자유롭게 당신께 아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감사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에 좋은 것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목숨을 잃어도 감사하는 분이셨기 때문에 세상에 구원을 낳으실 수 있으셨고 하느님의 어머니까지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성모님을 닮으려면 잃어가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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