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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01 조회수1,058 추천수6 반대(0) 신고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 윤경재 요셉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루카2,16~21)

 

 

 

2017년 닭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벽닭이 울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했던 베드로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듯이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국정 혼란이 모두 제 탓인 것만 같아 부끄러운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우리나라 백성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하나같이 우상의 굴레에 빠져 헤맨 한 해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모두 권력의 우상, 돈의 우상, 헛된 명예의 우상에 빠졌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인, 언론인, 경제계, 노동단체, 학계, 종교계 누구하나 책임지려하지 않고 서로 네 탓만 외치고 있습니다. 사실 어리석은 대통령을 뽑은 국민도 책임이 큰데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반성하기보다 한풀이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여전히 권력의 우상에 빠진 사람들은 이번일이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하며 자기들은 다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네도 똑같이 어떤 우상 숭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신 상태로는 언제 어떻게 이와 같은 전철을 밟을지 모릅니다.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라고 자신하던 베드로도 스승 예수께서 도망가지 않고 카야파 일당에게 붙잡히자 그만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여태껏 지켜온 스승께 대한 믿음을 한순간에 져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이 무서워 자신 안에 예수께서 뿌려주신 씨앗이 터져 막 자라나던 신의 속성을 송두리째 부정한 것입니다. 무력하게 권력의 우상에 무릎을 꿇은 셈입니다.

 

평소 견원지간 같았던 바리사이와 카야파 일당은 이스라엘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렸으면서도 막상 예수가 자신들 입맛에 맞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예수를 처단하자는 데 한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인간은 늘 그랬습니다. 말로는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막상 메시아가 나타나면 거부했습니다. 자기들이 잡고 있던 우상을 놓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손에서 놔야 새로운 것을 잡을 텐데 그러기에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통 우상 천국입니다. 청소년들은 이이돌이라는 우상을 바라보며 자라고 학부모는 성적과 대학이라는 학벌, 직장인은 돈과 재벌이라는 우상에 놀아납니다. 언론인과 학계도 명예와 말발이라는 우상에 빠졌고 정치인은 권력의 단물에 젖어 헤어날 줄 모릅니다. 있는 자는 자기가 쥔 것을 잃기 싫어서, 없는 자는 안일함에 빠져 우상이 우상인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평화의 땅, 안식의 땅, 자유의 땅에서 이리로 오너라.”고 손짓하는 예수를 향해 우리도 베드로처럼 그저 손만 내젓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오. 나는 그 땅을 모르오. 나는 신의 속성을 모르오.”라고 소리치면서 말입니다.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는 요즘 말로 철저한 흙수저로 오셨습니다. 자칫하면 애비 없는 자식이 될 뻔했습니다. 지상에서의 삶도 철저하게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인간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줄 알았습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주라는 삶의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 광야에서 악마가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라고 우상 숭배로 유혹했어도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선물은 구유라는 겸손이었으며 두 번째 선물은 우정이라는 사랑이었으며 마지막 선물은 십자가였습니다.

 

겸손과 사랑과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가난해도 행복감을 느끼며, 부자라도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권력이 있어도 그것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모든 이의 종이 되고자 합니다. 적게 갖고 많이 가진 것이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않는 상태가 평화입니다. 한 달란트를 쓸 능력이 되는 자와 열 달란트를 운용할 능력이 되는 자 모두 아버지의 뜻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첫 번째 선물이 바로 평화입니다.

 

눈물은 인간을 정화하는 힘이 담겼습니다. 베드로가 첫 새벽닭이 울자 자신의 언행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듯이 우리도 통회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동안 우리가 붙잡고 있었던 우상들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오늘 예수께서 태어나셨던 구유를 떠올리며 희망의 새해를 맞이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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