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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의 길을 꽃길로 가꾼 우편배달부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02 조회수1,224 추천수8 반대(0) 신고



 

자신의 길을 꽃길로 가꾼 우편배달부

 

- 윤경재 요셉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 1,25~28)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가면 예쁜 꽃이 많은 로스 알토힐이라는 꽃마을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데 그 곳에 아름다운 꽃이 피게 된 사연이 내려옵니다. 오래 전에 이 도시에는 요한이라는 우편배달부가 살았습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항상 똑같은 길로 편지 왔어요, 소포 왔어요.”라고 외치며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했습니다. 그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을 15년 동안 열심히 살았습니다.

 

서서히 중년이 되면서 자신의 인생과 직업에 대한 회의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에 싫증이 났습니다. 이런 우편배달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로 바꿀 것인지, 바꾼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매일 고민했습니다. 그러느냐 날이 갈수록 배달 가방은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새로운 길을 알려달라고. 그랬더니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계속하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 일이 너무나 지겹고 지루한데 어떻게 계속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계속하면서도 보람차게 살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이 문제로 기도하던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것 참 좋은 방법이로구나. , 이제부터 다르게 살아보는 거야.’

 

그는 여전히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자전거로 똑같은 말을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었는데, 집배원 가방 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지나가는 집집마다 골목마다 계속해서 꽃씨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어떤 꽃씨는 죽기도 했지만 어떤 꽃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우편배달부가 꽃씨를 뿌리고 다닌다는 걸 마을 사람들도 알고 꽃씨에 정성스럽게 물도 주고, 피어난 꽃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지나가는 거리는 꽃의 거리가 되었고 그가 다닌 마을은 꽃마을이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황량한 광야에서 거칠고 단조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이 해야 할 사명에 숙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하러 이 광야에 나왔던가? 요한은 단조로운 삶을 통해 신비가로 남고 싶었으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방향을 이끌어주는 예언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를 잘 알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와 레위인들의 질문에 나는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남들더러 회개하라는 요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儒學의 기본서인 大學에서 誠其意者毋自欺也라 하여 자신의 뜻에 성실하다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유학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天命에 충실하려면 속임이 없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준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발휘하되 속이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대범한 사람은 대범한대로, 소심한 사람은 소심한대로, 외향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 모두 자기 기질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양심을 지키고 사는 것입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 재능이 없어도 이것만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귀와 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지만 않으면 되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 PR시대를 살아간다며 누구나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런 행동이 옳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로 알고 살아갑니다. 조금씩 속이며 사는 걸 자랑으로까지 여깁니다. 그런 결과로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작금의 부끄러운 우리나라 사태가 바로 그 결과입니다. 권력자와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이 자기에게 솔직하지 못했기에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과대 망상적 증상을 지닌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비단 정치권만이 아닙니다. 언론계, 문화계, 교육계 등등.

 

우편배달부는 한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었으나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우편배달부는 그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행복과 평화와 자긍심을 덤으로 받았습니다. 이웃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신 이유도 바로 자신에게 거짓이 없었기에 나온 것입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선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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