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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명할 것인가, 체험할 것인가?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08 조회수1,144 추천수5 반대(0) 신고


 

설명할 것인가, 체험할 것인가?

 

- 윤경재 요셉

 

 

 

 

멀리 동방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발견하고 험한 사막을 건너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에 들어와 메시아가 어디 계신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냐는 식으로 헤로데와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습니다. 정통 유다인 혈통이 아닌 헤로데는 가뜩이나 열등감에 쌓여 있었는데 새로운 유다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잔뜩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살렘에 사는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 예언이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게 되었습니다.

 

헤로데는 왕궁에 빌붙어 사는 어용 사제와 율법학자들을 불러 메시아가 태어난다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또 메시아가 태어난다면 어디가 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의심이 많은 헤로데는 미리 알아내어 그 메시아를 없애버린다면 후환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용 사제와 율법학자들은 갑작스런 동방박사들의 출현과 왕의 질문에 놀라 예언서에 기록된 내용을 겨우 기억해 내었습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아 까맣게 잊었던 구절이었습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2사무 5,2)

 

포악한 헤로데 왕이 종 주먹을 내밀자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성경의 말씀을 새롭게 바라본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자기들 생명이 왔다 갔다 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사제와 율법학자들은 새로 태어난 메시아를 찾아보기를 바로 포기하였습니다. 그랬다가는 헤로데의 눈 밖에 나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설명(explain)하기는 하였지만, 체험(experience)하기는 싫었습니다. 영어 어원을 따져보면 두 단어에 차이가 크게 납니다. 설명은 밖으로 평평하게, 평이하게 풀어준다는 뜻이고, 체험은 밖에서 시도해본다는 뜻입니다.

 

설명은 성경을 죽은 동물처럼 박제화 하여 모셔두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설명은 성경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체험은 먼저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찾듯이 탐색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발걸음을 옮겨 내용을 잘 아는 사람에게 겸손하게 묻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실제로 그러한지 현장에 가서 진리와 마주쳐보는 것입니다. 탐색과 질문, 마주치기가 요체입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진리보다 우선하였던 사제와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아기 예수를 찾아 예물을 바친 동방박사들은 체험을 통해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를 만났습니다.

 

그리스도교회가 길고 험난한 로마 제국의 박해에서 벗어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자유화 되고 로마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에 일어난 운동은 역설적으로 고립된 사막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내적 영성 추구였습니다. 교회사는 그들을 사막의 교부라고 부릅니다.

 

20세기 미국 영성의 대가 토마스 머튼은 사막의 은수사 생활과 같은 시토회 소속 겟세마네 봉쇄 수도원에서 명상과 저술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관상했습니다. 젊어서 자유를 추구하다 방황했던 시절을 보낸 머튼은 자신의 문란한 생활을 뉘우치며 동서양의 여러 종교를 탐색했습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을 읽고 감명받아 가톨릭에 귀의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성경을 펼쳐 와 닿는 구절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펼친 대목이 루카복음서 4장35절 잠잠 하라는 구절이었답니다. 그는 잠잠 하라는 구절을 필생의 가르침으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겟세마네 수도원에 입회하였습니다.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펴서 읽어라!’는 어린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불현듯 느끼는 바가 있어 신약성경을 집어 펼친 곳인 로마서를 읽어 내려갔다는 사연과 비슷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 박사들이 선물을 가져다 준 까닭에 그리스도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활기를 되찾으려면 다시 동방으로부터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의 선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동양의 정신적 유산들로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적인 체험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편을 마련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영성적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무지의 구름이나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사상, 십자가의 성 요한, 대 테레사 같은 분의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명맥만이 유지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설명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그리스도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요청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인 오늘 동방박사들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아기 예수처럼 우리도 새롭게 동방의 선물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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