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11."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1 조회수949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르 1,29-39(연중 1주 수)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크게 두 가지 혹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곧 기도생활과 활동생활입니다.그리고 이 둘은 결코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또는 활동생활은 다시 말씀의 선포활동과 치유구마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예수님의3중 직무 곧 예언직과 사제직과 봉사직으로 말해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다 담고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당신께서 빛이심을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둘째 장면>은 아버지 성부와 친교와 유대를 이루시며,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신 장면입니다.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나서, 이웃 고을로 가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장면>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31)라는 구절입니다. 곧 손을 잡자 열이 내려가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치유를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자 치유가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산고의 아픔이 다해야 아기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탄생하면 산고의 아픔은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의 악습이나 결함이 고쳐지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께 응답하게 되면 우리가 고쳐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치유가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치유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34)라는 구절에 주의를 기울여봅니다.곧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코 믿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도 마귀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고백하지만, 결코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레사의 무덤에서 뛰쳐나온 마귀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마르 5,6-7)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렇지만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말합니다. 곧 예수님과의 관계를 맺고자 하질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고백은 할지 몰라도 믿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아는 것에 앞서 믿어야할 일입니다. 진정 믿을 때라야 진정 알게 되며, 그 아는 바를 믿고 그 믿는 바를 실천할 때 진정 안다고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의 일치에 당신 삶의 중심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 삶의 두 가지 차원, 곧 기도와 활동의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결코 기도 없는 활동이나 활동 없는 기도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곧 기도는 활동이 되어야하고 활동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무엇보다도 활동에 앞서 먼저 기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기도는 곧 활동으로 나아갔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곁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이유에 주의를 기울여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기쁜 소식”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오셨다(1,14-15 참조)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시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16,15).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고, 먼저 외딴 것에서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당신 권능의 표시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사랑과 구원의 표시였음을 말해줍니 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은총, 이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명을 바로 우리의 소명으로 받은 이들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