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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114 - 연중 제1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곽길섭 베드로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4 조회수1,29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01 14 () 가해 연중 제1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히브리서 4,12-16
마르코복음
2,13-17


곽길섭 베드로 신부님


<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중 첫 주간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번 주간 동안 예수님께서는 많은 치유사화와 함께 우리들 신앙생활의 방향성을 잡아 주시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주간의 마지막인 이 주말에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환기하시며, 앞으로 신앙생활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를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늘 걸려 넘어져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에게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바로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처럼, 병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완전을 기하며 완벽한 분들이 많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삶을 관리하면서 죄와는 거리가 멀게,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죄가 없노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뵙게 됩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관리하시는 분들을 뵈면 존경스럽고 참 좋지만, 죄가 없노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뵐 때면, 오히려 가슴이 아파옴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죽음과 고통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교만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연 인간이 열심히 노력하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세상적인 죄의 개념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만일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과연 ''란 무엇인가? 다시금 정리하셔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단순히 사회적인 개념의 죄는 다른 이에게 손해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정도. 공공의 질서를 위반하지 않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에 관한 개념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보다 철저하지도 보다 느슨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인들의 죄에 대한 근본 기준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올바로 성립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뜻과 다른 상태. 맞지 않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다른 의미의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고 해서만이 죄가 아니라,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소홀히 했기 때문에 그분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고 보면, 오늘 예수님께서 레위라는 세관원을 부르시고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율법학자들은 자신들 나름대로는 정말 죄도 짓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확신하며 생활했지만, 그래서 자신들은 죄가 없는 존재라고 자만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오히려 그들의 모습이 하느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놓여 있지 않기에 더 죄 많은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겸허하게 자신의 모습을 주님께 내어놓던 레위라는 세관원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죄는 반드시 처벌하시면서도, 우리 인간이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저지를 경우, 그 죄인을 자비로이 당신 품에 안으시며, 사랑으로 대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스스로 저지른 잘못과 죄의식에 휩싸여 실의에 빠져있는 우리 인간을, 새로운 희망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할 때 인간은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오히려 고개 숙여 그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청할 때, 우리는 주님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닫는 것이고 나아가 그분께로 한 걸음 다가가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자신을 모습을 제대로 되돌아 보며 그분 앞에 나설 수 있기를 기도하며 강론을 마칩니다.


곽길섭 베드로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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