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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4." 나를 따르라"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4 조회수1,054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르 2,13-17(연중 1주 토)

 

 

 

오늘 <복음>은 중풍병자의 치유 이야기에 이어, 세리인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마르 2,14)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발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걸음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앵무새처럼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다람쥐처럼 행실로만 본받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이 겉으로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곧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요, 방식에 있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랑의 삶의 방식이요, 용서와 자비의 삶의 방식입니다. 곧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마르 2,16) 의 방식입니다. 죄인이기에 단죄하고 처벌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눈과 방식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용서하고 사랑해야할 눈과 방식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이러한 삶의 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죄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불결한 이들과의 접촉은 그도 불결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과 타협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두둔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보내는 신의요, 자비요, 호의였습니다. 그들을 단죄한 것이 아니라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한 까닭입니다. 당신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까닭입니다.

 

그러니 ‘죄인들과 함께 어울린다.’고 비난하는 것은,마치 의사가 병자들과 함께 있다 하여 비난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서로 기쁨을 나누는 것이요, 사랑을 나누는 행위요, 한 가족임을 나타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속으로 들어와 그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삼으십니다. 자신의 몸에 죄를 묻힘으로 죄인들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감격인가?

 

이는 죄인을 ‘먼저’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앞세우기보다, ‘먼저’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흔히, 우리는 죄지은 이에게 ‘먼저’ 회개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용서하시고, ‘먼저’함께 식사를 하며 당신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먼저’ 죄인을 찾아오시고, ‘먼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보다 ‘먼저’ 죽으시고, 우리보다 ‘먼저’ 당신을 건네주십니다.

 

 

 

오늘도 그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마르 2,14)

 

 

 

우리 역시 죄지은 형제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용서하라 하십니다. 당신의 자비, 당신의 사랑에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우리가 죄지은 형제에게 ‘먼저’ 회개해야 용서하겠다고 완고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자비롭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희를 먼저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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