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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세리 레위의 눈동자)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4 조회수1,369 추천수1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세리 레위의 눈동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세관에 앉아있던 레위의 눈

동자를 유심히 바라보십니다.

저도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눈만 봐도 대충 그의 내면

상태를 알겠더라구요.

 어떤 분의

눈동자는 마치 갓 낚아 올린,

그래서 펄펄 뛰는 은 갈치의

살아있는 눈동자 같습니다.

삶이 총기로 반짝반짝 빛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구 발산합니다.

하루하루 삶이 흥미진진합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반대의

 눈동자도 만납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한물 간

‘간 고등어’ 눈동자입니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눈에

총기가 없습니다.

 살아있어도 진정 살아있지 못한

상태가 분명합니다.

이런 사람 옆에는 전염되니

가급적 가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세관에 앉아있던 레위의

눈동자가 그랬습니다.

흐리멍텅 초점 잃은 레위의

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즉시

그의 내면을 읽으셨습니다.

그는 세리로서의 자신의 비루한

삶에 지쳐있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이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동족들에게

 각종 세금을 부과하고

거둬들이고 거둬들인 것을

로마에 상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차액을 발생시켜야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이 커졌기에

어쩔 수 없이 동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매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는 시쳇말로

 ‘이자놀이’ ‘대부업’, ‘고리대금업’

 형태의 부업을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안정을 이뤘지만

마음은 늘 허전하고 슬펐습니다.

 마치 벌레라도 바라보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동족들 얼굴

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는 굽신거리지만 뒤돌아서서

손가락질하고 쌍욕을 해대는 것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레위는 자주 ‘내가 이러려고

 기를 쓰고 세리가 되었나?’하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사실 이미

 영적으로는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이런 레위에게 다가가신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나를 따라라.”

(마르코복음 2장 14절)

이 말씀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라는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더 이상 가치도 의미도 없는 육적,

세속적 세리로서의

삶을 버리고 영적인 삶,

기쁨과 환희의 삶,

제자로서의 삶으로 넘어오라는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마치 천둥처럼, 마치 벼락처럼

다가온 예수님의 초대 앞에 레위는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따라나섭니다.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주판도,

현금함도, 외상장부도 아무 미련 없이

 내팽개치고 그냥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비록 늦었지만 레위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요

 핵심이 무엇인지를 찾았습니다.

그로 인해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모든 것들을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뒤로 던져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그 옛날 레위처럼

흐리멍텅한 눈으로 세관에

앉아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역시 레위처럼 목숨은

붙어있지만 진정으로 살아있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추종하기 위해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우리 앞에 새 날을 허락하시고

광대무변한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시는 주님의 초대에 기꺼이

 예하고 응답해야겠습니다.

좀 더 민첩하게 그분을

따라나서기 위해 과감하게

 버릴 것이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해봐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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