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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신을 새 부대에 담을 때에야 참 기쁨이 /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6 조회수848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경주용 말을 비행기로 실어 다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비행 내내 적정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고, 바닥에는 배설물 흡수제가 깔렸단다. 말들에게 쾌적한 비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으리라. 비용이 꽤 들었을 게다. 경주용 말들은 이렇듯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혹사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 말들은 옆에서 지키지 않으면 무한정 먹는단다. 배가 터질 때까지. 그것은 그 무서운 채찍에 뛰고 또 뛰어야하기에. 그래서 먹는 것으로 해소하려 든다나. 그렇지만 경기에 임할 때는 엄청난 무게로 시달리기에 마부는 일정 이상 못 먹도록 엄격히 그 량을 관리한단다. 결승점에서는 화려한 환호지만 이렇듯 비참한 숨은 구석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19-22)’

 

예로부터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했다. 하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단식은 수단이요 은총을 얻는 방법이다. 예수님은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라고 하신다. 단식은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란다. 바리사이들은 단식 자체를 맹종하고 강요했지만 예수님은 아니라신다. 사랑을 위한 믿음이어야지 고통을 위한 믿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리라. 신앙인들은 경주용 말이 아니기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으로 보이려고 하지 말라시며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사랑을 실천하는 게 단식이란다. 사실 모세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단식하였고 바빌론 재상 하만이 유다인을 몰살하려들자 에스테르 왕비는 사흘이나 단식하였다. 또한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로 가 그 도시의 멸망을 알리자 그들은 하느님만을 믿고자 단식을 선포하였다.

 

우리는 단식이라는 육체적 수련으로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형제적 사랑을 발견하고 실천한다. 우리는 절제의 훈련으로 하느님 말씀을 우리 영혼 안에 채우고 구원을 얻는다. 하느님 자비를 가난한 이들께 전하며 속죄와 나눔의 삶을 살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있는 동안 단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구원의 혼인 잔치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었기에. 다만 그분께서 수난을 겪으시고 돌아가셨을 때 비로소 제자들은 비통해하며 단식하였다. 따라서 참된 단식은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며 회개하는 행위일 게다.

 

해외 연수나 유학 시절에는 마음고생이 많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데에는 반드시 현지 언어와 새로운 삶을 익혀야 하기에. 지금껏 삶의 방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새로움이란 대개 이렇게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듯이 새로움을 받아들여야만 하리라. 예컨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나에게 불편한 이가 있다고 보자. 그들을 내 삶에서 배제한다면, 그것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지 못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매일 새롭게 살려는 노력이 있으면 바로 그러한 이들에게서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처음 대하는 이였던 거다.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에게서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꼈고, 시기와 미움이 치솟았다. 만약 그들이 그것들을 이겨내 자신들을 새롭게 했다면 그분에게서 나오는 새로운 그 무엇을 맛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결국은 외면했다. 사랑은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에 겪는 그 고통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을 안은 게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은 나와 그들을 묶는 거다. 지금 내 삶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는지를 돌이켜보자.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참 기쁨을 느낀다면 그건 성숙한 신앙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새 부대에 담을 궁리를 새로이 해야만 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신랑,혼인 잔치,단식,새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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