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빼기 또 빼기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7 조회수1,187 추천수3 반대(0) 신고


 

빼기 또 빼기

 

- 윤경재 요셉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마르 2,23~24)

 

 

 

<빼기 또 빼기> - 윤경재

 

 

친구 따라 참꽃 따라 온 산을 헤맸네

지천으로 널린 연분홍에 취해

영변에 약산을 노래하다가 그만

서산으로 길이 멀어져 갔네

 

늦은 밤

꿈속 고향에서 영순이 만나고 깨니

땀범벅 신열이 솟네

 

꽃 몸살이려니 위안하고

쌍화탕 한 종지에

낮잠으로 풀어내지

 

병문안 핑계로 막걸리부터 찾는 친구

네가 산에서 나랑 한잔 걸쳤다면

아무 탈 없었을 거야

 

빼기에 또 빼기 셈하면 플러스 되는 걸

모른다고

네 몸이 말하는 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모른다고

 

난 허허실실 웃고 말았어

 

 

 

지난 늦은 봄에 친구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갔다가 참꽃이라 부르는 진달래꽃이 활짝 핀 능선을 만나 예정에도 없던 종주를 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노래를 부르며 호기롭게 걸었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떨어지니 내가 가져 것도 다 떨어졌습니다.

 

친구가 배낭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마시기를 권했지만 손사래를 쳤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술에 약한 놈이 다리가 풀려 친구 등에 업혀 내려올까 겁이 났더랬습니다.

 

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된통 몸살이 걸려 출근도 못하고 자리 깔고 누워 헤맸습니다. 안부 전화로 걱정하던 친구 녀석이 제 먹을 막걸리 두 통을 허리 춤에 끼고 들어와 한다는 소리가 걸작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막걸리 마시고 취권으로 걸었다면 지금쯤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라고, 마이너스에 마이너스 하면 플러스 되는 거 모르냐고 하데요.

 

사 가져오라는 쌍화탕 한 종지는 오다가 다 마셔버렸는지 꿩 구어 먹은 체하고, 다 늙어서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고 핀잔만 하더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전도여행을 다니시다가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엔 흔히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미리 나있지 않은 길을 새로 내는 예수님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무성한 밀 사이를 헤치며 길을 내었습니다. 부딪칠 때마다 까실하게 전해져 오는 밀대의 감촉이 좋아 일행은 양팔을 벌리며 마치 춤을 추듯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결에 춤추는 밀대를 바라보시며 추수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마음으로 흡족하게 여기시면서 걸어가셨습니다. 그 뒤를 따르며 길을 내던 제자들도 오랜만에 고향 생각에 파묻혀 저도 모르게 밀 냄새를 맡고 싶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밀 한줌을 꺾어다가 코에 대고 고향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나는 듯한 비릿한 내음을 온몸으로 만끽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시작하자 전염된 듯 제자들 모두 밀대에 손을 대었습니다. 율법이니 뭐니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 지니 여행에 지친 몸도 풀어졌습니다.

 

이런 광경을 목도한 바리사이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안식일에는 멀리 여행가는 것도 금하고, 일하는 것도 금하는데 예수와 그 제자 일행은 남의 밀밭에 들어가 밀 이삭을 뜯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어겨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잘 알 만한 사람이 어기니 부아가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나무라듯 예수께 항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닫혀있는 그들을 보니 측은해졌습니다. 안식일 정신은 사람들을 억제하고 올가미 씌우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쉬면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돌보아 주셨는지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으라는 뜻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고 바쁘게 지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라는 의미로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혹여 산에서 제 몸이 지쳐 탈진했을 때 친구 말대로 막걸리를 한 모금만이라도 받아 마셨더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에 허허실실 웃고 말았습니다. 제가 바리사이 같은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