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1.18 수/ 변두리에서 생명이 숨 쉬는 한 가운데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7 조회수1,262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2주 수, 마르 3,1-6(17.1.18)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셨다.”(마르 3,3)





A man with withered hand






변두리에서 생명이 숨 쉬는 한 가운데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고발하려는 적대자들 앞에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들어 위축된 이를 회복시켜주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법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던 다마스커스 학파와 달리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는 안식일일지라도 목숨을 구해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견해에 비춰보더라도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치유해주신 것은 율법을 어긴 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임에도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3,3) 하십니다. 이 대목에 매우 중요한 뜻이 숨어 있습니다. 하필이면 ‘안식일에’ 율법을 거슬러 치유를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안식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시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틀로 오염된 창조 때의 안식의 의미를 정화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안식은 하느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쉬는 것이고 멈추는 것입니다. 쉬고 멈추는 이유는 생명이요 자유이신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불어넣어주신 생명의 숨을 호흡하기 위해서이지요. 멈춤은 생명이신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나를 비우고 내 생각과 의지를 멈추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이 영원한 생명이 꿈틀거리는 지점인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십니다. 그는 손만 오그라든 것이 아니라 마음도 영혼도 위축되어 있었고, 생명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절망과 체념의 섬에 고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그 사람의 인간적인 부족함과 잘못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내, 편견과 따돌림도 큰 몫을 하였을 것입니다.

‘일어나는' 동작은 하느님의 자비와 생명을 전해주시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로 향하는 변화와 변형의 몸짓입니다. 일어나는 순간 이미 굳어진 그의 몸과 영혼은 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운데로 나오라’는 말씀은 손이 오그라든 그가 변두리에 머물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주변에서 머뭇거리는 그를 당신이 계시는 한복판으로 초대하신 것이지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초대한 ‘한가운데’는 회당의 한가운데 곧 하느님의 집 한가운데이며, '정의와 평화의 임금'(히브 7,2)이 계시는 곳이자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리이며, 모든 사람들과 언제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열린 만남의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로 나오라는 말씀 자체가 그에게 생명과 희망과 자유의 숨결을 불어넣어주고자 하시는 ‘거룩한 손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관대함과 자비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목덜미가 뻣뻣하고 마음이 고약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그런 태도야말로 스스로를 손이 오그라든 환자가 되게 하고, 나아가 다른 이들을 저 변두리로 내몰아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숨을 쉬지 못하게 가로막고 말 것입니다.

이제 굳어진 사고의 틀과 선입견, 오만과 편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변화를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과감히 버려야겠습니다. 그런 오그라든 ‘죽음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바람 부는 변두리에서 주님께서 사랑으로 초대하시는 '생명의 자리', 신명나는 축제 한복판으로 나아갑시다. 그곳이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자유와 해방의 터, 생명과 행복의 못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