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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다섯 부류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1 조회수1,144 추천수12 반대(0) 신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다섯 부류

 

- 윤경재 요셉

 

 

 

 

 

마르코복음서 37절부터 22절까지 내용은 예수님 주위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다섯 부류의 모습을 그립니다. 1.‘피상적인 기적에만 열광하는 군중’ 2.‘교묘한 간교를 숨기고 다가오는 악령들’ 3.‘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복음 선포와 악령과 싸우는 제자들’ 4.‘소문에 휘둘린 친척들’ 5.‘기득권을 지키려 선과 악을 멋대로 재단하는 종교지도자들등 다섯 부류가 나옵니다.

 

이 다섯 부류는 똑같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출현은 그저 쉽게 넘어갈 평범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고 표명해야 할 급박한 사건이었습니다. 누구도 무관심하게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더러 우리가 갈 길을 확실하게 정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인간이 타인을 판단하는 데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친척들은 얼마 전까지 예수와 함께 살던 친지와 이웃이었습니다. 어느 날 집을 나간 예수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 무척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이 괴상했습니다. 악령을 물리치고 병자를 치료하며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도 했습니다. 평소에 알던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모습만 보았던 그들은 도저히 이렇게 변한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몇 년 전에 가혹한 세금에 항거하며 많은 사람과 폭동을 일으켜 죽임을 당한 갈릴래아 출신 유다가 떠올랐습니다. 또 자신이 메시아입네 하며 떠들고 다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광신도들도 몇이나 있었습니다. 친척들은 예수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되었고, 혹시라도 자신들이 피해를 당하게 될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마침 예수가 베드로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말께나 한다는 몇몇 친지들이 나섰습니다. 예수를 붙잡아다 집에 가두어 버릴 작정이었습니다. 예수가 미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익히 안다고 여기고 이러저러한 소문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예수의 변한 모습을 알아보려하지 않았으며 진실을 묻기보다 소문에 더 귀 기울였던 것입니다.

 

요즘도 이와 같은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요. 카더라 통신에 휩쓸려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요즘처럼 극심할 때도 없습니다. 그 피해는 소문에 휩싸인 당사자는 물론 결국 사회가 떠안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마음 약한 연예인들은 악플과 소문을 견디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또 익명의 소문 덕분에 사회가 지불한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감추려 들고  솔직히 고백하지 못하는 풍조가 이렇게 만들었고 또 소문이 무서워 감추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입니다.

 

소문에는 정직이 최선의 대책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유세도중 인터뷰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솔직히 그런 적이 있었고 심지어 코카인까지 손 댄 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릴 적에 흑인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반항기를 자신도 겪었으나 회개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대학까지 마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미국국민은 돌을 던지기는커녕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습니다. 우리 국민과 정부와 정치인들도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마르 3,25)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4`35)

 

이 대목과 병행구문격인 루카복음서 11,27-28절을 보면,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답하십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 말뜻은 아무리 잘 아는 처지의 상대라도 눈을 씻고 다시 살펴보라는 경구입니다. 성장하는 상대를 알아보고 자신도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성장하는 데에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계속 변화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어떤 부류에 속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누구도 이 선택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과연 나는 이 다섯 부류 중 어느 부류에 속해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한번 선택했다고 변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그만큼 부족하고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자기 자신의 이해타산과 관계없이 괄목상대하는 심정으로 자신과 이웃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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